​'4·19 혁명' 발생은 부정선거 및 정치깡패 폭력때문?

2018-04-19 16:15
3·15 부정선거, 4·18 고려대생 습격사건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
시민 민주주의 운동 통해 독재정권 붕괴된 점이 의의

[이미지제공=아이클릭아트]


금일 '4·19 혁명 기념일(이하 4·19 혁명)'을 맞이하면서, 혁명이 발생한 계기 및 시대적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4월 혁명', '4·19 의거'로도 불리는 4·19 혁명은 1960년 4월 19일 전국 시민들과 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해 대규모로 일으킨 민주주의 운동을 뜻한다.

이 혁명이 발생하게 된 데는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자행한 '3·15 부정선거'가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1948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까지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불법 개헌을 통해 무려 12년간 장기집권 했다. 당시는 이미 국민 사이에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들끓는 시기였다.

1960년 3월 15일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은 반공개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뇌물 살포 및 협박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같은 날 경남 마산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은 이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정부는 폭력으로 이를 강제 진압하면서 훗날 대규모 시위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특히 같은 해 4월 18일 서울 고려대학교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이날 고려대생 3000여명은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해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며 그대로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했고, 학교로 다시 돌아가던 중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습격을 지휘한 사람은 당시 자유당 편에 속해 당시 정치깡패로 악명이 높았던 임화수였다. 임화수가 이끄는 '반공청년단 종로구단 동대문 특별단부' 소속 조직폭력배들은 고려대생들을 몽둥이, 벽돌 등 각종 흉기를 이용해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대학생 2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급기야 이에 격분한 전국 시민들은 다음날 4월 19일 혁명적 투쟁에 나서게 된다. 이후 시민들은 시위 규모를 더욱 확대하며 같은 달 26일까지 완강하게 투쟁,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하야하고 제2공화국이 출범하기에 이른다.

4·19 혁명은 시민 민주주의 운동을 통해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당시 급속히 진행됐던 도시화와 국민의 교육열은 혁명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4·19 혁명 58주년인 19일 전국 곳곳에서는 민주 영령을 위로하고 민주주의 정신을 되새기는 행사가 진행됐다. 정치권 역시 4·19 혁명 정신의 계승을 다짐하며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다시금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