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감원장, 금융개혁 칼도 못 뽑고 주저 앉나

2018-04-11 19:00
지방선거 앞두고 여·야 공방전 번져
할 일 해도 "물타기 아니냐" 수근
금융권 의혹돌파용 개혁 우려도

금융권의 이슈가 확 바뀌었다. 금융개혁 이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모든 이슈를 집어 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김기식 금감원장이 취임 일주일 만에 사퇴론에 휩싸이며 애초 계획했던 금융개혁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김기식 사퇴론은 정치권에서부터 쏟아졌다. 실제로 야당에서는 김 원장에 대한 의혹을 무더기로 제기하고 있다. 외유성 출장, 여비서 특혜 승진, 국회의원 시절 후원금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금감원장 리스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흥식 전 원장은 채용비리로 얼룩진 금감원을 개혁하겠다며 임원진 전부를 물갈이 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본인의 채용비리 의혹이 드러나면서 불명예 퇴진을 했다.

그런데 이번 금감원장 논란은 과거와는 결이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금융권이 아닌 정치권 문제로 확전됐기 때문이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여야 간 갈등으로 확산돼 연일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한쪽에서는 내로남불을 얘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금융개혁을 좌초시키려는 계략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김 원장이 금감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금융권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 시절에 저승사자로 통했던 그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와 재벌개혁에 발벗고 나설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김 원장은 지난 2일 취임식에서도 "감독당국인 금감원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통해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권위와 위상을 확립하겠다"고 공언했다.

금감원 내부의 기대감도 컸다. 금감원의 독립성을 제고하고 본래 기능인 감독 역할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했다. 임직원들의 사기도 높아졌다. 하지만 이제 금융권은 김 원장을 두려움이 아닌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금감원장으로서 당연히 목소리를 내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얽혀 있는 문제를 덮으려고 의도적으로 저런다"는 식이다. 전일 금감원이 검사에 착수하기로 한 신한금융그룹 채용비리 사건은 물론이고, 삼성증권의 공매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물타기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국민들의 불만도 높다. 김 원장이 해명하는 '관행'이 금융사들의 '관행'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채용비리나 가계대출에 의존한 영업을 비판하며 관행을 뜯어고치라고 하는데 "김 원장이야 말로 잇단 의혹에 대해 관행이라고 해명하니 누가 누구에게 관행을 고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금융권에서는 김 원장이 의혹 돌파용으로 '금융개혁'이라는 칼날을 들이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금융사 직원은 "금감원장이라는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이런저런 개혁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금융사에 으름장을 놓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김 원장에 대한 의혹이 사실이든 아니든 금감원의 권위가 다시 한 번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금융개혁의 칼을 뽑기도 전에 주저앉을 판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