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문 변호사 시대] '미세먼지 소송' 지현영 변호사 "목표는 이슈 파이팅"

2018-04-12 09:00
한·중 정부 상대 소송…결과보단 '이유'에 초점
中, 한국 5년 감축 목표 1년만에…국내관리 중요
현실의 벽에 포기도 많아…전문변호사 양성 절실

지현영 환경재단 미세먼지대응센터 국장 겸 변호사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소문동 환경재단 사무실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어릴 적 파란 하늘을 보고 '멍 때리기'를 좋아했다. 파란 하늘은 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보기가 힘들어졌다. 변호사가 됐다. 조금 더 '모두의 이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싶었다. 또 재밌게, 신바람나게, 지속적으로 하고 싶었다. 지현영 환경재단 미세먼지대응센터 변호사가 지난해 10월 재단의 문을 두드린 이유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소문동 환경재단 사무실에서 지 변호사를 만났다.

◆ 국내 첫 미세먼지 소송 1년째···진행은 '지지부진'

그는 '미세먼지 소송 1세대 변호사'다. 지난해 재단에 입사하자마자 국내 첫 미세먼지 소송 변호를 맡게 됐다. 소송은 2017년 4월 5일 이미 제기된 상태였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 시민 10명이 한국·중국 정부를 상대로 1인당 위자료 300만원을 물어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 그러나 이들은 소액 사건은 선고 이유 없이 주문만 내릴 수 있다고 판단, 원고를 다시 모집해 91명 이름으로 같은 해 5월 말 다시 소장을 냈다. 청구 금액도 2억7300만원으로 늘었다.

"이번 미세먼지 소송은 선고 '주문'보다 '이유'가 중요합니다." 지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이유'를 강조했다. 재판에서 중요한 건 미세먼지의 원인을 정확히 밝히고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데 있다는 의미다. 

"재판 결과를 100% 긍정적으로 장담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손해와 인과관계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는 결과보다 이유에서 기대를 걸고 있어요. 재판 과정에서 정부가 법원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고, 전문가가 법정에서 진술하는 내용을 판결문에 넣는 거요."

"일본은 천식 환자들이 지자체를 상대로 손배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가 있어요. 한국도 앞으로 미세먼지 관련 소송이 확대될 텐데, 그때 실제 미세먼지로 질병을 얻은 피해자분들이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데 저희 소송이 밑바탕이 되는, 그런 의미가 되고 싶은 거죠."

피고 당사자에 중국을 포함한 것도 같은 이유다.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은 '한국 법원에 재판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각하될 가능성이 크다. 소송의 내용을 보고 판단하는 기각과 달리, 각하는 소송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 따지기 이전에 소송 요건이나 절차 자체에 문제가 있을 때 내리는 처분이다.

반대로 한국 법원이 판단할 수 있다고 해서 '기각'하면 오히려 나중에 한국 정부가 외교적으로 미세먼지 문제를 풀 때 중국에 변명의 여지를 주는 게 된다. 지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피고를 중국 정부에서 리간제(李干杰) 중국 환경보호부 부장으로 변경했다. 중국에 항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향후 외교적 관계를 고려한 차선책이었다.

소송 진행은 지지부진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중국 측에 관련 서류를 송달하는 일이다. 헤이그 송달협약은 문서 송달부터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첫 변론기일을 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협약은 민사·상사에서 소송 당사자가 외국인일 경우 적용되는 규정이다. 협약에 따라 미세먼지 소송 첫 변론기일은 오는 10월 12일 열린다.
 
◆ "중국, 한국 5년 치 미세먼지 감축 목표 1년 만에 달성"
 

지현영 변호사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지 변호사는 재단에서 소송뿐 아니라 미세먼지 관련 포럼도 맡고있다. 지난 4일에는 전문가들과 함께 '팩트체크, 중국발 미세먼지 어디까지 진실인가' 끝장토론회를 열었다.

"포럼에서 나온 얘기를 종합하면, 중국발 미세먼지가 줄어드는 건 맞아요. 한국의 5년 치 미세먼지 감축 목표를 중국은 1년 만에 달성하고 있어요. 중국은 불과 2~3년 사이에 대도시 기준 석탄 화력발전소를 다 폐쇄해 버렸어요. 집에서 쓰는 석탄 원료도 못 쓰게 하고, 한국 전체 차량 숫자와 맞먹는 노후 차를 폐차했어요."

"중국 미세먼지 농도가 한국보다 아직 3~4배 높은 건 맞지만, 감축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기여도 측면에서 한국을 역전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오더라도 한국에서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거예요.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국의 기존 오염원과 합쳐지면 입자가 커지면서 정체기간도 길어지거든요."

"중국과 협력은 길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 사례를 보더라도 60년대 문제 제기 이후 협약이 이뤄지기까지 20년이 걸렸어요. 국가 간 공동연구를 통해 미세먼지 기여도가 상호 얼마나 된다는 데이터를 축적해야 하는 거예요. 아직 국내 미세먼지에서 중국 기여도가 '전 시기 통틀어 평균 얼마'라고 말하긴 일러요. 전문가들은 한·중 공동 연구결과 발표가 2020년쯤에나 나올 거라고 봐요."

지 변호사는 국내 대책 가운데 아쉬운 점으로는 △경유차 규제의 구멍 △신규 석탄 화력발전소 설립 움직임 △미세먼지 관련 자료 부족 등 3가지를 꼽았다.

"수도권 기준으로 보면 미세먼지 원인으로 자동차 영향이 가장 크다고 봐요. 정부가 대기오염 중 이산화탄소만 고려해서 클린 디젤을 장려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감장치 달게 하는 규정이 생긴 이후에도 정말 달았는지, 달지 않은 경우엔 과태료를 매기는지 이런 부분을 제대로 집행 안 한 적이 많아요. 또 진짜 옛날 차가 훨씬 더 많은 배기가스를 배출하면서도 규제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은 부분이 있고요."

"다음으로 지금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를 폐기하겠다고 하지만, 약속한 만큼 진행되고 있지 않아요. 오히려 전 정부에서 신규 화력 발전소 허가 내준 것을 그대로 하려는 게 많아요. 마지막으로 미세먼지 배출량과 배출원을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 자료를 제대로 수집해야 하는데 소규모 사업장이나 시골 농장, 가정 등에서 나오는 오염원에 대한 비관리 분야가 너무 많아요."

◆ 환경 변호사는 '패소 전문'···"미세먼지 전문 변호사 절실"
 

수도권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 이틀째인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구립 어린이집생 원아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체험학습장으로 이동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업계에선 환경 관련 소송을 전담하면 '패소 전문 변호사'로 불린다.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운 데다,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하다 생업을 위해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제 미세먼지 소송을 맡으면서 기득권층의 권위적인 벽이 굉장히 높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또 시민단체도 돈이 있어야 활동하는 건데, 재정적으로 조율해 나가는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고요. 박사 과정 밟으시는 분들도 대기오염 분야를 전공했다가 너무 진척이 없어서 많이 갈아탄다고 해요."

"어릴적 하늘을 보고 멍 때리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중국 다큐멘터리 '언더 더 돔(under the dome·돔 천장 아래서) 아세요? PD가 아이에게 '너 파란 하늘 본 적 있니?'라고 물어요. 아이가 너무나 천진하게 없다고, 구름이 희뿌옇게 있는 것만 본적 있다고 얘기해요.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미세먼지에 집중하는 사람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지현영 변호사 프로필

학력
▲전남대 사범대 부속고 졸업
▲한양대 법학과 졸업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경력
▲제6회 변호사 시험 합격
▲법무법인 건우 변호사
▲현 환경재단 미세먼지 대응센터 국장 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