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의 인더스토리] 코레일-SR 통합 논의의 함정
2018-03-29 16:28
- 가정1.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철도 공공성을 책임질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논쟁
- 질문1. 코레일 vs SR 통합논쟁, 게임의 룰은 과연 공정한가
- 질문1. 코레일 vs SR 통합논쟁, 게임의 룰은 과연 공정한가
가정해보자. 어디선가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직무 수행 능력이 있는 지 따져보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오영식 사장이 철도의 공공성과 안정성을 보장해야 할 코레일 사장 자리에 적합한 지를 논해보자는 것이다.
총학생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으로 노조를 위한 경영에 누구보다 적임자란 옹호론이 나왔다. 정치권 인사란 점이 국회는 물론 국토교통부 등과의 대관업무에 유리하다는 주장도 가세했다.
반대론자들은 철도 경영에 문외한이란 점을 부각시켰다. 유라시아철도 허브 구상을 실현하고 철도 경쟁체제에서 코레일의 경영 합리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문지식이 필수란 것이다.
일각에선 음모론이 제기됐다. 철도 경영의 공공성을 명분으로 코레일 사장 자리를 노리는 세력의 의도적 흔들기란 게 골자다. 정치적 논쟁은 숨은 손익계산서가 따로 있기 마련이니까.
실제 이런 논쟁이 벌어진 건 아니다. 수많은 논쟁이 자체의 현실성 또는 적합성과는 별개로 일단 시작되면 그 자체에 매몰되기 일쑤다. 그런 바보같은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불행히도 비일비재하다.
SRT 요금이 같은 노선을 통과하는 KTX보다 10% 싸다는 점을 두고 경쟁 체제의 긍정적 효과란 쪽과 아니란 주장이 부딪힌다. 한발 더 나아가 SR의 지분구조상 정상적인 경쟁체제가 아니란 주장도 나온다.
코레일의 고객 서비스가 향상된 것을 놓고 경쟁체제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SR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코레일이 요금을 낮추고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코레일이 실제 그렇게 한 건 SR과의 경쟁체제가 시작된 이후다.
논쟁은 각각의 입장마다 합당한 논거가 있어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선을 긋는 게 어렵다. 코레일과 SR간의 통합 논쟁은 정책적 선택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크다. 경쟁체제의 효율성에 대한 논쟁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SR의 존재가 완벽한 형태의 철도경쟁 체제이건 아니건 그 출범은 경쟁체제의 효율성을 인정한 정책적 선택의 결과다. 가정이지만 오영식 사장이 직무수행 능력이 있는지 없는 지에 대한 논쟁은 그 적합성 여부를 떠나 매몰되는 순간 점화한 쪽이 이익을 보게 된다.
이번 논쟁은 몇가지 함정이 있다. 우선 철도경쟁 체제가 시작된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경쟁 체제의 실효성을 따지는 게 과연 적합한 지 의문이다. 국토부가 이미 9월에 결론을 내겠다고 한 이상 이 물음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이번 논쟁이 답정너(답을 정해놓고 너는 답만해)같은 식이 돼서는 안된다. 논쟁의 프레임이 통합 여부면 경쟁체제의 실효성이 없다는 결론은 곧 통합이다. 하지만 그런 프레임을 깨면 같은 결론에서 경쟁체제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결정되는 게 연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프레임에 따라 전혀 상반된 결과가 도출되는 셈이다.
이번 논쟁의 당사자인 코레일과 SR이 공정한 링 위에 서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어떤 논쟁이든 흔드는 쪽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경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코레일 입장에선 통합 결론이 나면 좋고 아니면 본전이란 의미다.
링을 평평하게 만들 방법이 있다. 흔든 쪽이 질 경우 패널티를 주는 것이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 대가다. 경쟁체제의 효율성이 조금이라도 인정되면 통합을 주장했던 오영식 사장은 책임을 지고 자리를 내놓을 수 있는가. 게임의 룰 자체가 공정성을 잃었다는 점이 이번 논쟁의 가장 큰 함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