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진 '길 위의 에세이'] 파나고니아(상) - 토레스 델 파이네
2018-03-27 09:48
남미 대륙 아랫도리, 역삼각형 모양의 남위 40도 이남 지역을 통칭 파타고니아라고 부른다. 넓이는 100만 ㎢로 한반도의 5배. 안데스산맥을 기점으로 서편 태평양 쪽은 칠레, 동편 대서양 쪽은 아르헨티나 땅이다.
위성 촬영한 구글 지도를 보면 파타고니아 한복판에 남북으로 길쭉한 흰색 부분이 나타난다. 빙하다. 이곳 빙하는 길이 379km, 평균 넓이 35km, 총면적 4,826㎢로 남극과 그린란드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
지구 최장 안데스산맥이 7,000km를 내달려 남극 앞바다로 풍덩 빠지기 직전, 이곳에서 절정의 풍광을 연출한다.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은 파타고니아 빙하지대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다. 그 바로 위쪽이 아르헨티나의 모레노 빙하.
깎아 세운 듯한 토레스 3봉을 시작으로 뾰족뾰족한 바위 봉오리들이 거대한 군락을 이루며 늘어섰다.
암봉들은 만년설을 머리에 뒤집어쓰거나 어깨 또는 허리춤에 살짝 둘렀다.
폭포 되어 떨어지고,
크고 작은 호수들이 만들어진다.
호수는 밀크 그린 또는 밀크 블루 등 다양한 색깔이다.
일렁이는 호수를 끼고 어우러지는 푸른 초원과 하얀 설산, 조각 작품 같은 돌산 봉우리들.
와~ 별천지다~.
장엄하고도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압도 당해 전율마저 느껴진다.
제주도보다 조금 큰 이곳의 산악 길을 걷기 위해 전 세계에서 배낭 인파가 몰려온다.
9박 10일의 일주 코스와 4박 5일 일정의 W코스가 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투어 버스를 타고 하루 만에 정복(?) 했다.
짧은 시간에 핵심 포인트만을 콕콕 집어 보여주는 게 패키지 투어의 장점 아니던가.
최고의 절경을 부지런히 폰카에 담으며 트레킹에 대한 미련을 달랬다.
삐죽삐죽한 해발 2,500~3,000m 암봉들은 빙하작용의 결과물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암봉 중엔 회색 몸체에 검은색 머리의 기이한 봉우리들이 있어 더욱 이채로웠다.
마치 윗부분을 검정 페인트로 칠해놓은 듯하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1억 년 전 이 일대는 바다에 잠겨있었는데
바닥에 쌓여있던 퇴적층이 검은 부분이다.
퇴적층 바로 밑에서 해저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다 바닷물을 만나 굳어진 게 밝은 회색 부분의 화강암이다.
1,200만여 년 전의 일이다.
이것이 융기한 뒤 빙하기 때 1km 두께의 얼음에 갇혀있다
빙하가 녹으며 깎이고 쓸려 지금 같은 형태가 됐다고 한다.
1억 년의 세월을 통해 만들어진 자연의 조각품이라~.
너무 까마득한 시간대여서 가늠조차 어렵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 겁(劫)과 맞먹는 걸까.
백 년에 한 번씩 내려온다는 선녀의 치맛자락에 스쳐 집채만 한 큰 바위가 모두 닳아 없어지는 그 무한대의 시간 - 겁.
암봉의 연륜에 비하면 100년 채우기도 힘든 우리네 인생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 아닌가.
암봉들의 긴 호흡 앞에 서니 악다구니처럼 싸우고 볶고 애달 캐달 하는 인간 군상이 우습게 느껴진다.
버스에서 내려 살토그란데 폭포까지 가는 200여 m 산길에서 악명 높은 파타고니아 바람을 만났다.
눈뜨기도 힘들 정도다.
휘청거리며 간신히 폭포에 도착했다.
바람에 밀려 폭포로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가이드가 연신 겁을 준다.
거세게 쏟아지는 우윳빛 물의 포말 위로 무지개가 뜬다.
예쁜 장면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다 강한 바람에 밀리자 여자들 몇몇은 아예 바닥에 주저앉는다.
주저앉아서도 사진을 찍는다.
인증샷을 빠트리면 방문 자체가 무의미한 듯 필사적이다.
폭포는 호수와 호수를 연결한다.
위쪽 호수 뒤로 투톤 색깔의 거대한 바위 조각들이 전체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 독수리가 회색 둥지에 앉아 하늘을 응시하는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다.
예쁜 페오에 호수엔 작은 섬이 있고 그림 같은 식당이 있다.
호수와 어우러진 설산 암봉 조각을 감상하며 그림 같은 점심 식사를 했다.
자연의 절경 품에 안겨 맥주 잔을 부딪치니 신선이 따로 없다.
‘푸른 탑’ 또는 ‘푸른 뿔’이란 뜻의 이 공원은 인간의 손때가 덜 탄 청정지역으로도 유명하다.
낙타와 사슴을 섞어놓은 듯한 과나코를 비롯, 퓨마, 안데스 콘 도르, 플라멩코, 사슴 등
야생 동물이 많이 서식한다는데 콘도르만 모습을 보여줬다.
이곳은 유네스코 생물다양성보존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버스는 꾸불꾸불 산길을 돌아 그레이 호수 끝에 닿았다.
토레스 돌산 군락 상당 부분이 한눈에 들어온다.
호수 길을 산책하며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웅장한 아름다움에 다시 빠져든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50 곳’중 하나로 포함된 이유를 알만하다.
날씨 변덕이 워낙 심해 구름만 감상하다 가는 경우도 적잖다는데
비교적 쾌청한 날씨여서 쾌재를 불렀다.
먼발치로 그레이 빙하도 보인다.
빙하 관광은 아르헨티나 쪽으로 예정돼 있어 아쉬움을 남긴 채 토레스 공원을 떠났다.
1만 8천여 년 전 역시 빙하작용으로 만들어진 이 동굴은 높이 30m, 깊이 200m.
1896년 독일서 이주민이 이 동굴 안에서 멸종 동물 밀로돈의 뼈와 가죽을 발견했다.
동굴관리소의 팸플릿에 따르면 밀로돈은 머리~꼬리 2m(키 3~7m라는 자료도 있음)에 몸무게 1톤의 거대 초식 동물이다.
곰처럼 생긴 녀석은 두 발로 설 수 있고 지금의 나무늘보처럼 느림보에다 이빨이 약한 동물로 14,500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살았다고 한다.
밀로돈은 동화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족의 모델이라는 설도 있다.
멸종의 주 요인은 급격한 기후변화로 꼽히고 있으며 기타 화산과 11,000년쯤부터 이 지역에 나타나기 시작한 인간의 사냥도 이들의 멸종을 재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굴속 뼈 등이 발견된 장소에 밀라돈 복제품을 만들어 놨다.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 가는 길
인류 최초로 지구를 일주한 마젤란이 우연히 발견한 대서양~태평양 수로가 마젤란 해협. 그 해협 중간지점에 있는 푼타아레나스는 파나마 운하가 뚫리기 전까지 번창하던 항구였다.
지금은 칠레 파나고니아의 관문으로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과 펭귄섬 등으로 가는 관광객들의 중간 체류지다.
시내 한복판 아름드리나무로 잘 꾸며진 공원 안에 마젤란 동상이 서있다.
그런데 마젤란보다 더 인기를 끄는 건 아랫부분 장식용 조각품 파타고니아 인디언의 발이다.
그 발을 만지면 이곳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많은 이들이 쓰다듬어 반질반질 윤이 난다.
바닷가엔 가마우지 떼들이 우글거린다.
검은 몸통에 배 쪽은 하얀색인 데다 곧추서있는 모습이어서 펭귄으로 착각하기 쉽다.
진짜 펭귄은 배로 2시간 거리의 막달레나 섬에서 만날 수 있단다. 우리 팀 일정엔 펭귄과의 만남 시간이 없다.
이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황량한 벌판을 3시간쯤 달리면 널찍한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를 끼고 조용하고 아담한 어촌 마을이 나타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
토레스델파이네 공원 트레킹족들이 등산화 끈을 조여 매는 곳이다.
토레스델파이네에서 남쪽으로 112km 떨어진 이곳엔 트레킹족을 위한 숙소, 장비 판매 및 대여점, 관광회사,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다.
1520년 이 지방을 탐험하던 마젤란이 원주민의 발자국을 보고 '커다란 발 (patagon)'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유럽인들 평균 키는 155cm이었지만 이 지역 원주민들은 180cm에 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