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수칼럼] 평화냐 전쟁이냐, 벼랑에 선 韓北美

2018-03-11 13:55

[사진 = 육정수 초빙논설위원]

[육정수칼럼]

지난주는 한국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놀란 한 주였다.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일이 일어났다. 북한의 김정은이 비핵화를 향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하자고 나선 것이다. 문재인-김정은은 4월 말 판문점의 우리 측 ‘평화의집’에서 만나기로 했고, 트럼프는 5월 평양으로 초대됐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 기대를 해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비핵화 대화에 실패할 경우 어떠한 사태가 빚어질지 불안하다. 우리 특사단은 방북 결과에 대해 당장이라도 핵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낙관적인 전망으로 국민의 기대감을 잔뜩 부풀려 놓았다.

하지만 특사단이 전달한 내용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김정은의 발언에 진정성은 있는 것인지, 대화내용에 북한의 어떤 복선(伏線)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북한의 비핵화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끝없는 의문들이 스쳐간다.

벌써 미국에서는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불발로 끝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의 방북 결과를 듣고는 “좋다. 더 빨리 만날 수 없느냐”는 반응까지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 행동을 보이지 않는 한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미국은 김정은 비핵화 발언의 진정성을 여전히 회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 역시 특사단이 전한 내용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어봐도 김정은의 발언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 이유로, 특사단 방북에 남측 기자가 단 한명도 수행하지 못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 측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TV가 제공한 사진과 영상만으로는 현장의 생생한 대화 분위기를 국민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 연출된 장면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적어도 처음 몇 분간의 환담 장면은 기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또 특사단이 방북 결과를 설명하면서 짧은 시간에 별다른 이견 없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전한 것도 의문을 낳았다. 사전에 비밀접촉을 갖고 미리 합의를 해놓고 있었던 게 아닌가 짐작된다. 쉽게 말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었다.

김정은의 발언 내용을 전하는 말투 역시 지나치게 단정적이었다.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 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 “미·북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조성돼 있다고 판단한다”는 등이 그렇다.

서훈 국정원장은 미국행 기내에서 가진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김정은이 빠른 판단력과 결단력을 갖고 있고, 미국과의 문제에 대해 진정성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한 차례 짧은 대화로 김정은의 속을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특사단장인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도 “여러 가지 많은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김정은에 대한 이런 긍정적·호의적 자세와 평가는 앞으로 추가협상 과정에서 북한 측의 의도를 오판해 속을 여지가 있다. 특히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가 실패로 끝날 경우, 문재인 정부는 중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남북 및 북·미 접촉의 핵심은 비핵화에 구체적 성과를 내는 일이다. 물론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대화를 시작한 이상 완전한 핵폐기 원칙을 끝까지 고수해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드는 데 진력해야 할 것이다. 이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와 트럼부 정부에 부과된 역사적 책무이다.

이번에 김정은이 대화에 응하고 나선 것은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유엔 회원국들의 군사적·경제적 압박과 제재가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정부가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을 참가시키기 위해 그들의 요구에 저자세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인 것은 큰 실책이었다. 이는 미국이 현 정부의 이념과 정체성에 의문을 갖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해오는 동안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핵 6자회담, 유엔결의에 의한 비핵화 압박,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사업 운영,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 등 갖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 대가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핵실험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각종 도발뿐이었다.

그럼에도 북핵 문제에 관해 청와대 관계자는 얼마 전 “우리는 (미·북 사이에서) 중매를 서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는 북핵 문제의 당사자는 미·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는 직접 당사자가 아닌 제3자라는 인식인 것이다. 안이하고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북한 핵무기는 남한이 아닌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북한의 거짓선전을 옹호하는 셈이다.

1994년 영변 핵위기 이후 김씨 3대 세습정권이 핵을 개발해온 북한은 이제 자신들의 핵미사일이 괌, 하와이는 물론 미국 전역을 때릴 수 있다고 호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동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 개발은 사실이 아니다”거나 “북핵은 미국이 목표”라는 그들의 거짓말을 공개적으로 떠벌려줬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러고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제 한반도 전체가 왜곡된 질곡의 역사에서 벗어나 자유와 민주가 꽃피는 평화의 땅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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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