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호 칼럼] 안희정과 다윗, 그리고 콜슨
2018-03-08 09:17
전쟁이 진행되고 있던 어느 날, 한가로이 낮잠을 자다 일어난 다윗은 ‘밧세바’라는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창밖으로 지켜보다 성적 탐욕에 사로잡혔다. 부하들은 전쟁터에 나가 있는 그 상황에서 다윗은 밧세바를 궁궐 내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여 잠자리를 가졌다. 밧세바는 ‘우리아’라는 다윗의 충복의 아내였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임신하자 다윗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전장으로 보낸 후, 그를 혼자 놔두고 후퇴하게 하는 수법으로 우리아를 죽게 만들었다. 사실상의 살인이었다. 정신적 나태가 부하의 아내를 범하는 죄로 이어졌고, 이 죄를 은폐하기 위해 더 큰 죄를 지은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 도지사가 ‘미투(#Me Too)태풍’ 직격탄을 맞고 추락했다. 낙폭이나 속도가 이전 다른 사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빠르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였던 만큼 그의 돌발적 낙마는 충격적이다. 안희정은 ‘충청 대망론’을 업고 지난 19대 대선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번 사건으로 낙마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권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던 ‘미래권력’이었다. 안희정의 낙마로 여권의 대권 구도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판 자체가 바뀔 것이다.
앞으로 여권의 대선주자는 누가 될까?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김부겸 행자부 장관? 이낙연 총리? 조국 민정수석? 오는 6·13 지방 선거가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되겠지만, 여권의 대권경쟁 지도는 다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권의 권력지형뿐만 아니라 전체 대권구도의 변화도 불가피하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급작스러운 대권구도 변화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안희정 전 지사가 보여준 일련의 행태들이다. 도지사와 수행비서라는 권력관계, 지위관계를 이용해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행동은 어떤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386 운동권의 상징’이자 진보세력의 기대주였고, 참신하고 개혁적인 이미지, 그리고 누구보다 인권을 부르짖었던 안희정 전 지사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 그리고 실망과 배신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장래가 촉망되던 ‘정치인’ 안희정은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을까? 우리 사회의 오랜 남성 중심적·남성 지배적 문화의 영향을 받은 탓도 있겠지만, ‘지배적 권력자’로 타락해버린 그의 교만과 정신적·도덕적 해이가 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불법 대선자금 수수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고, ‘폐족’까지 자처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안희정은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40대 젊은 나이에 충남 도지사에 당선돼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고, 지난 19대 대선 후보 경선 시절 돌풍을 일으키며 확실한 차기 대선 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혹시 이러한 정치적 성공이 그를 권력에 취하게 만들고 오만하고 나태한 권력자로 만들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급기야는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력하고 파멸에 이르는 오늘을 만들지 않았을까? 안희정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 하듯 하는 오늘이지만 누구나 빠져들 수 있는 ‘성공신화의 덫’이다. 만약 안희정이 성공할 때 스스로를 더욱더 엄격하게 관리했다면, 잘나갈 때 더욱 겸손했다면, 가진 권력이 커질수록 더 높은 윤리의식을 갖고 처신했다면, 이런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첫 폭로 이후 안희정은 페이스북을 통해 ‘일체의 정치활동을 중단한다’라고 밝혔다. ‘정계은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미련을 남겨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도 ‘안희정은 끝났다’, ‘이제 그를 지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안희정이 정치적으로 재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면 ‘인간’ 안희정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안희정은 우리나이로 54세다. 100세 시대를 감안하면 아직도 갈 길이 먼 인생이다. 극단적인 선택은 금물이다. 무엇보다 철저한 자기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자신을 믿고 아끼고 지지해줬던 수많은 지지자들, 충청도민들, 그리고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만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인생에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추락한 닉슨의 최측근 ‘찰스 콜슨’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콜슨은 닉슨 대통령의 최고 브레인이자, 제일의 참모였다. 온갖 술수를 써서 닉슨을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게 만들었지만,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성공과 출세를 향해 질주했던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콜슨은 성공과 권력의 자리가 아니라 실패와 치욕의 자리에서 새로운 삶을 발견했다. 종교에 귀의한 그는 교도소 재소자들이 갱생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93년에는 저명한 종교상인 ‘템플턴 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시민메달’을 받기도 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후회와 절망감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을 안희정! 과연 안희정은 실패와 치욕의 자리에서 콜슨처럼 새로운 삶을 발견할 수 있을까? 선택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