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교 칼럼] 마크롱의 개혁적 리더십
2018-03-05 09:29
마크롱의 정치 비전은 ‘프랑스 르네상스’이다. 프랑스는 2차대전 이후 1975년까지 영광의 30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이후 쇠퇴를 거듭했다. 정치는 리더십을 상실했고, 경제는 퇴보하고, 행정은 무능했다. 국가 몰락의 위기감이 팽배했다. 근대 혁명의 종주국 자부심은 무너졌다. 현대 문화 대국의 자존심도 사라졌다. 마지막 선택은 마크롱이었다. 경험이 일천하고 정책에 대한 신뢰도 부족했다. 하지만 새로운 인물이 필요했다. 마크롱은 작년 대선 과정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목표는 민간과 공공부문의 효율화이다. 구체적으로 경제 활성화 정책, 비효율적인 정치와 공공부문 개혁, 교육 개혁, 외교와 국방 강화 등을 공약했다. 비전과 정책에 찬성한 유권자들이 신생 정당 ‘레퓌빌리크 앙마르슈’에 과반수의 의석을 몰아줬다. 개혁에 큰 우군을 얻었다.
첫 어젠다는 경제 살리기이다. 지난 10년간 프랑스 경제는 수렁에 빠져 있었다. 경제성장률은 1%에 머물렀고, 실업률은 10%를 넘었다. 청년 실업률은 25%가 넘었다. 재정적자도 심각했다. 경제 침체의 원인은 강성 노조와 반기업 정책이었다. 먼저 노조 개혁에 나섰다. 산업별 정치 노조의 협상 권한을 약화시키고, 기업의 해고 권한을 확대했다. 부당해고퇴직금, 초과노동수당 등 기업의 부담도 완화했다. 동시에 친기업 정책을 추진했다. 유로존 최고 수준이던 법인세를 대폭 인하하기로 했다. 현재의 33%에서 2022년까지 25%로 낮추기로 했다. 기업의 자본 이득과 배당금에 대한 세금도 단일세율(30%)로 개선했다. 부유세도 축소했다. 혁신 경제를 위해 창업 지원 펀드도 대규모로 조성한다. 전통적으로 경쟁력을 지닌 항공과 우주, 농식품, 화장품 산업에다 바이오와 디지털 등 4차 산업을 집중 육성한다. 대규모의 공공 투자로 경기 활성화를 추진할 계획을 발표했다.
경제 개혁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외국으로 떠났던 기업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마크롱은 직접 글로벌 기업 유치에 나서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작년 국내총생산(GDP)은 1.9% 성장했고, 실업률은 8.9%로 떨어졌다. 10년 만에 도래한 경기회복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회복을 평가하며 프랑스를 ‘올해의 국가’로 선정했다.
비효율적인 공공부문 개혁에도 적극적이다. 공공 부문 근로자 12만명을 감축할 예정이다. 복지 재정지출을 축소해서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의 3% 이하로 낮춘다. 적자 공기업 개혁에도 나섰다. 대표적인 철밥통인 국영철도공사는 개혁의 길에 들어섰다. 고용제도, 근무시간, 연금 등 혜택을 줄여 일반 기업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노조의 반발은 예상대로 크다. 역대 정부마다 노조의 반발에 막혀 개혁에 실패했다. 마크롱은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정치 개혁도 발표했다. 국회의원 수를 3분의1로 축소할 계획이다. 비생산적인 정치는 국민의 세금 낭비일 뿐이다. 하원의원은 현재 577명에서 400명으로, 상원의원은 현재 348명에서 200명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국회의원 4선 연임을 금지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제출하라고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정치권 자리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야당의 반대가 거세지만 국민들 대부분이 정치 개혁에 찬성하고 있다.
경제가 회복되면서 외교 안보 부문에서도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영국의 탈퇴 이후 해체 위기에 몰린 유럽연합(EU)의 결속을 주창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에 맞서는 ‘강한 유럽’의 재탄생을 외치고 있다. 글로벌 G2인 미국·중국과의 외교 관계도 성공적으로 재정립하고 있다. 자유무역과 환경 협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국제 외교를 리드하고 있다. 청년들의 단기 군사 징병제를 통해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연대감을 불어넣을 방침이다. 또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서 국방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핵심은 핵무기 현대화와 핵잠수함 건조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걸맞은 국방력을 갖추겠다는 계획이다.
개혁의 과정은 힘들고 어렵다. 찬성보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마크롱 또한 예외가 아니다. 대화와 설득을 위해 현장을 찾지만 돌아오는 것은 계란이고 지지율 하락이다. ‘개혁의 역설’이다. 적당한 거래는 쉽지만 변혁의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은 그만큼 어렵다. 노동 개혁으로 근로자들의 지지가 떨어지고, 공공부문 개혁으로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마크롱은 '철저한 개혁'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그의 개혁적 리더십을 좋은 사례로 벤치마킹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