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新데땅트시대 열리나] 북미대화 역사...2.29 제네바 합의부터 반복된 파기

2018-03-11 15:1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대북 전략이 효과를 내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희망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이를 전임 정부의 실패와 현 정부의 성공이라는 구도로 차별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문 타운십의 공화당 후보 선거지원 유세에서 "북한을 막 방문하고 미국에 온 대북 특사단이 많은 언론 앞에서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발표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AP=연합뉴스]
 

북·미 간 대화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6·25전쟁 이후 적대 관계인 북한과 미국의 험난했던 대화의 역사가 주목받고 있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로부터 시작된 북·미 대화는 수많은 '합의'와 '폐기'를 거듭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2012년 중단됐다.

양국 간 대화의 시작은 북핵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이었다. 1993년 북한 영변 핵시설 의혹으로 국제사회의 핵사찰 요구가 높아지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거부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1차 북핵위기가 발생했다.

핵 개발 문제를 놓고 북한과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되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3차례의 고위급 회담이 진행됐다. 

1994년 로버트 갈루치 당시 미국 북핵 특사와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났다.

양측은 북한이 핵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 등이 경수로 2기 건립과 연간 50만t의 중유를 포함한 경제지원을 한다는 내용의 북·미 기본합의를 이끌어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북·미 관계는 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포괄적인 고위급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정책을 펼치며 2000년 수교 직전까지 분위기를 끌고 간다.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의 방북과 조명록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북한군 차수)의 방미로 수교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소속인 조지 W 부시 후보가 당선되며 정상회담이 무산됐다.

2002년 10월 3일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를 대표로 한 미국 협상단의 평양 방문 시,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며 2차 북핵위기가 발생했다. 

2차 북핵위기 직후 북·미 양자 회담 외에도, 중국이 문제해결을 위해 6자회담을 제안하면서 2003년 8월 27일 베이징에서 제1회 6자회담이 열렸다.

이후 2005년 9월 북한 비핵화 원칙과 로드맵을 담은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면서 북핵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 창구인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를 제재하자, 북한은 6자회담 탈퇴를 선언하고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러자 같은 해 10월 31일 북·미·중 3국은 회동을 거쳐 6자 회담 재개에 합의했다. 수차례의 6자 회담을 거쳐 △2007년 북한의 핵시설 페쇄와 불능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 △5개국의 에너지 100만t 지원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과정 개시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2·13합의가 채택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07년 말까지 북한이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대신 미국 측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무역법에 따른 제재 해제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10·3합의'가 채택됐다.

2008년 북핵 검증방법에 대해 한·미 양국과 북한이 충돌하고, 2009년 5월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실시하며 북·미관계는 극으로 치달았다.

북·미 대화는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재개되는 듯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즈음인 2011년 7월 미국 뉴욕에서 제1차 북·미 고위급회담과 같은 해 10월 제네바에서 2차 북·미 고위급회담이 열렸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24만t 규모의 식량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2·29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북한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발사하고, 2013년 2월 3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북·미 관계는 사실상 단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