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하이브리드角] 평화 vs 파국 기로에 선 3월의 한반도…문키아벨리와 봅슬레이
2018-03-01 16:12
2018년 3월 한반도는 그 갈림길에 오른 4인승 봅슬레이다. 맞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우리의 원윤종·전정린·서영우·김동현 팀이 역사적인 은메달을 딴 그 경기. 봅슬레이는 방향을 조종할 수 있는 무동력 썰매를 타고 직선-곡선 얼음 트랙을 활주하는 경기다. 썰매를 조종하는 파일럿(1번)이 가장 앞에 타고, 2번·3번 선수는 썰매 안에서 몸을 좌우로 움직여 균형을 잡는 게 주 임무다. 맨 마지막 4번 선수는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후 브레이크를 잡아 봅슬레이를 정지시킨다. 무사히 트랙을 완주하는 데 4인 중 어느 누구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한반도 4인조 봅슬레이 경기에서 파일럿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수준급 파일럿은 험난한 커브 코스를 만나기 전부터 어느 각도로 진입할지 ‘선제적 대응’을 한다. 0.01초 찰나의 판단으로 봅슬레이가 뒤집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직선주로에서 썰매가 벽에 부딪히지 않게 핸들링을 잘해야 한다. 뒤에 탄 2번 선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3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두 ‘거구’가 자칫 몸을 엇갈리게 움직여 썰매를 우당탕탕 요동치게 해선 안 된다. 고난도 구간을 통과할 때 2번 트럼프가 잘못 힘을 주면 봅슬레이는 전복해 대형 참사가 빚어질 수 있다. 마지막 4번 선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언제, 어느 속도로 브레이크를 잡을지에 따라 순조롭게 활주를 마무리하느냐 여부가 달렸다. 브레이크를 잡지 않으면 계속 질주해 절벽으로 추락, 공멸이다.
서양 정치학의 고전 ‘군주론’(니콜로 마키아벨리)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그 어떤 악행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학 권위자인 강정인 서강대·김경희 성신여대 교수는 군주론을 번역하면서 “책이 쓰여진 1500년대 초반 이탈리아의 배경과 상황을 먼저 봐야 한다”고 적었다. 즉, 마키아벨리는 프랑스, 스페인 등 외세의 각축장이 된 조국 이탈리아 반도의 독립과 통일, 평화와 번영을 위해 군주가 갖춰야 할 덕목을 주창한 것이다. 로마제국 멸망 이후 천년 넘게 이탈리아는 독립국가가 아닌 ‘유럽의 장화’로 불리는 지도 위의 한 지역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키아벨리 당시 이탈리아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한반도의 지도자다. 2012년 대선 첫 도전 때 정치초년생 문재인은 권력에 대한 의지, 욕망이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그의 눈망울은 선한 사슴의 그것과 같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위해 끔찍히도 싫어하는 정계에 입문, 대통령 후보가 됐다. 그는 패했고, 재도전을 택했다. 바람 잘날 없었던 야당 대표 생활과 세월호, 촛불혁명을 거치며 그는 비로소 ‘호랑이 눈’을 갖게 됐다. 반대자들은 경멸하고, 지지자들은 추앙하며 문 대통령에게 다양한 별명을 붙인다.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그가 ‘문키아벨리’(문재인+마키아벨리)라고 불리길 바란다. ‘한반도 봅슬레이’가 파국이 아닌 평화와 번영이라는 종착점에 무사히 당도하기 위해서 그 어떤 일도 서슴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