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막말ㆍ계엄령 등 정치 불확실성 불구 필리핀 경제 고속 성장 계속
2018-02-23 03:00
필리핀은 2017년 6.7%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면서 동남아시아 국가 중 베트남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고속 성장 흐름은 올해에도 이어져 성장률이 7%를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거침없는 막말, 초법적 마약단속, 계엄령 등 지난해 필리핀 뉴스를 장식한 주요 이슈들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게 들리지만 필리핀 경제는 서방 매체들이 우려하는 것보다 양호하고 건전한 상태임을 방증하는 수치다.
블룸버그와 래플러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 1월 필리핀 정부는 2017년 필리핀의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6.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필리핀은 6년 연속 6%를 웃도는 고속 성장을 지속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 대열을 지켰다.
필리핀의 경제를 뒷받침한 것은 지출 증가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필리핀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 지출은 2017년 4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6.1% 증가했다. 정부 지출 역시 같은 기간 14.3% 늘었고, 투자도 8.2%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필리핀의 성장세가 한층 더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필리핀의 대형은행인 BPI의 에밀리오 네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1일(현지시간) ‘2018년 BPI 투자전망 보고서’를 통해 2018년에는 성장률 6.8%, 2019년에는 7.2%를 기록하면서 점차 향상될 것으로 전망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철도, 도로, 공항 등을 비롯한 기간 시설에 2022년까지 총 18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인프라 황금시대’를 열었다. 고도 성장을 유지하고 2022년까지 필리핀을 중간소득 국가로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공 투자를 통한 인프라 구축이 필수라는 인식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필리핀 정부는 작년 무장 반군의 점령으로 몸살을 앓았던 민다나오 섬에 철도를 깔고 마닐라 북부 클라크와 마닐라를 연결하는 지하철을 건설할 계획이다. 클라크 국제공항도 연간 1200만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보수·확장된다.
필리핀 정부는 인프라 투자 규모를 2015년 GDP의 5.4% 수준에서 2022년에는 GDP의 7.4%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인프라 개발 재원의 70∼80%는 자체 조달하고 나머지는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중·일 등 주변 경제국들은 필리핀 인프라 시장 공략을 위해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는 등 해외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높게 유지되면서 정책 추진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니다. 에르네스토 페르니아 필리핀 사회경제기획부 장관은 지난달 필리핀 방송 ANC와의 인터뷰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이 고속 성장하는 비결에 대해 “두테르테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기관들과의 협조를 통해 기업들의 투자 심리를 끌어올리고 있다”면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다만 인플레이션은 필리핀의 거시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3.2%로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지만 강한 성장률 속에서 올해부터 시행된 세금 인상은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테르테 행정부는 올해 도입된 첫 세제개혁 패키지를 통해 유류세를 인상하고, 담배와 자동차 구입에 대한 소비세를 올리는 한편 가당음료에 대한 설탕세도 신설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세 면제로 인한 세수 공백을 메우고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 밖에도 수입이 증가하는 가운데 페소화 가치가 달러 대비 상당한 약세 흐름을 보이는 것도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다. 페소 가치는 올해 들어서만 달러 대비 4% 이상 미끄러지는 등 신흥국 통화 중 두드러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필리핀의 경상수지 악화와 인프라 투자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로 인해 페소 약세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필리핀 정부는 아직까지 크게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평가다. 래플러에 따르면 지난주 벤저민 디오크노 예산관리 수석은 기자회견에서 ”달러 대비로는 페소가 하락하고 있지만 다른 통화 대비로는 괜찮은 수준이다. 또한 페소 강세가 강한 경제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력 있는 페소이지, 강한 페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필리핀 물가상승률이 점점 높아지면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는 시각은 강화되고 있다. 지난 1월 필리핀의 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4%를 기록하면서 중앙은행이 2018~2020년 목표로 하는 2~4%의 최상단을 가리켰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긴축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2월 정례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현행 3%로 동결했다. 전문가들은 내달 필리핀 중앙은행이 결국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의 최근 조사에서 대부분의 이코노미스트들은 내달 정례회의에서 정책 조정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신속하게 긴축을 시작함으로써 현재의 성장세를 장기로 끌어가고 세금 인상과 신용 증가에 따른 물가 상방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