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스포츠 교류史]경평축구서 평창까지… 스포츠로 '작은 통일'

2018-02-19 18:10
1964 도쿄올림픽 첫 체육회담, 경평축구대회도 개최
1991년 탁구·축구 '코리아팀'… 공동입장은 총 10번
MB·박근혜 정부 남북 경색에 스포츠 교류도 위축
2018 평창 계기로 부활…패럴림픽 최초 공동입장도

 

지난 18일 강원 강릉 관동아이스하키센터에서 진행된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순위 결정전을 마친 뒤 남북단일팀 선수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평창올림픽은 역대 겨울올림픽 중 최고."

혹한에 따른 건강상의 이유로 폐회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지난 18일 귀국한 장웅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80)의 말이다.

출국 직전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장 위원은 "남북이 힘을 합치니까 역대 겨울올림픽 중 최고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특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결성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역사에 남을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4일 평창올림픽을 위해 이르게 방남해 개회식에 참여한 장 위원은 이날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돌아갔다.

그의 말마따나 북한이 참가하기로 하면서 평창올림픽은 여러모로 전 세계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백두혈통'으로서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친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방남 기간 문재인 대통령과 수차례 손을 마주잡은 장면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10여년간 단절된 남북 관계가 스포츠로 다시 연결된 것이다.

스포츠는 종종 국가 간 관계를 변화시키곤 한다.

‘스포츠에는 국경도 이데올로기도 없다’는 말처럼 스포츠는 정치적 이념·갈등으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국가 간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긴장을 완화시킨다. 이에 '스포츠 외교'라는 말이 생기기까지 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뭉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스포츠 외교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단일팀의 구호인 '우리는 하나다'는 스포츠가 외교적으로 관계를 어떻게 완화시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두고 국내외로 '평양올림픽 논란' 등이 일자 우리 국민들은 단일팀에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우리 관중들은 손에 ‘우리는 하나, 평창은 평화‘라고 적힌 손팻말과 한반도기를 들고 단일팀을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관중들은 남북한 선수들을 구분 않고 단일팀을 ‘우리 팀 선수’로 응원하며 힘을 보탰다. 이들 일부는 경기 도중 “통일 조국”이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같은 남북 간의 스포츠 교류가 지난 10여년간 휴업 상태였던 남북관계에서 긴장을 완화시키고 닫혀있던 소통의 문을 '완전히' 열게 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1991년 단일팀으로 경기하는 남한 현정화(오른쪽)와 북한 리분희. [연합뉴스]


◆1964년 도쿄올림픽 계기로 첫 남북 체육회담··· 1990년대 ‘통일축구대회’로 교류 마중물

분단 이후 남북은 체육회담을 중심으로 간접적인 스포츠 교류를 이어왔다. 당시 국력이 우리보다 우세했던 북한이 적극적으로 스포츠 교류를 제의한 반면, 한국전쟁 직후 불신과 적대감이 팽배한 한국은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남북 정부가 체육회담을 통한 스포츠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서였다.

1963년 1월 IOC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동·서독의 전례에 따라 남북한이 1964년 도쿄올림픽에 단일팀을 구성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IOC의 요청을 계기로 남북은 세 차례의 체육회담을 열었다. 당시 남북은 스위스 로잔과 홍콩 등지를 오가며 체육회담을 열어 ‘아리랑’을 단가로 확정하고, 단일기 문제는 IOC에 맡겼다.

그러나 수 차례의 회담에도 불구,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단일팀의 도쿄올림픽 참가는 결국 무산됐다. 단일팀 구성이 무산되면서 단일기 관련 논의도 진전 없이 유야무야로 끝났다

이후 남북 스포츠 교류의 신호탄을 다시 쏘아올린 것은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다. 남북통일축구대회는 남북 간 체육교류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화합과 신뢰를 쌓아가자는 취지로 개최됐다.

남북 간의 축구 대결은 일제 강점기에 서울과 평양 간에 열렸던 ‘경평축구대회’가 효시로 남아 있다.

경평축구대회는 1929년 10월 서울 휘문고보 구장에서 도시대항전 성격으로 처음 개최됐고, 1935년 일시 중단될 때까지 19차례의 경기가 열렸다. 해방 직후인 1946년 3월 남북 간 통행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평축구대회가 재개됐지만 분단이 굳어지면서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남북통일축구대회의 첫 경기는 1990년 10월 평양과 서울에서 잇따라 열렸으며, 두 번째와 세 번째 대회는 각각 2002년 9월과 2005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됐다.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 행사는 매번 다른 주체가 비정례적으로 진행했다.

남북통일축구대회는 이후 스포츠 교류에 큰 영향을 끼쳐 첫 단일팀 구성과 공동입장 등을 성사시켰다. 또한 당시 진행되던 남북 당국 간 대화는 물론 경제·사회·문화 등 다른 분야 교류협력의 긍정적 분위기 조성에도 기여했다.

네 차례의 만남을 가진 남북은 1991년 일본 지바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같은 해에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남북 단일팀인 '코리아팀'으로 출전하면서 본격적인 스포츠 교류를 알렸다.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남북한은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2000년 시드니하계올림픽 남북한 선수단 첫 공동입장. [연합뉴스]



◆2000년대 들어 ‘스포츠 왕래’ 활기··· 역사적 첫 공동입장은 '시드니하계올림픽'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6·15선언은 스포츠 교류를 더욱 활성화시켰다. 6·15선언 이후 남북은 다양한 종목에서 왕래하며 경기를 열고 북한은 남측에서 개최하는 국제대회에 대규모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했다.

2000년대 가장 눈에 띈 남북 스포츠 교류로는 공동입장을 빠트릴 수 없다. 남북은 2000년 시드니하계올림픽에서 역사적인 첫 공동입장을 이뤘다.

첫 기수로는 한국의 정은순(농구)과 북측 박정철(유도)이 남북의 한반도기를 앞세워 공동 입장했으며, 한반도기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10월 남북이 합의한 단일기를 채택해 사용했다.

당시 남북한 선수단 180명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입장하자 12만여명의 관중들은 기립 박수를 치며 감동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시드니올림픽 이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북한 선수들과 응원단이 함께 참여했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남한과 북한 선수단의 동시 입장이 있었다. 이어 2006년에 열린 토리노동계올림픽과 도하아시안게임에 남북이 참여해 함께 한반도기를 흔들었다.

마지막 공동 입장이 이뤄진 2007 창춘동계아시안게임에서는 오재은(알파인스키)-리금성(아이스하키)이 '남녀북남' 기수로 자리에 섰다.

첫 공동입장을 시작한 이후 남북은 지금까지 종합국제대회에서 모두 9차례 공동으로 입장했다. 
 

2013년 4월 박근혜 정부에서 개성공단 체류인원 전원 철수조치를 내린 가운데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한국전력 작업차량이 개성공단 화물을 가득 실은 채 귀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다시 단절된 남북 스포츠교류

2010년 들어서 남북 스포츠 교류는 정치적 관계가 반영되면서 다소 침체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나자 우리 측이 남북교역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5·24조치를 취하고, 이후 북측은 대북 제재에 대한 반발로 군 통신선을 끊으면서 남북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 우리 측의 강경한 대북 정책과 북한의 핵 개발 등으로 남북 관계가 얼어붙자 이에 따라 남북 스포츠 교류도 빠른 속도로 위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은 양측 지역에서 개최되는 국제대회에 상호 참가하는 형식으로 꾸준히 민간에서의 남북교류를 이어왔다.

북한 선수단의 방남은 2013년 7월 서울과 경기 화성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축구선수권대회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2017년 강원도 강릉의 국제여자아이스하키대회 등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6월 전북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때도 북한 태권도시범단이 방남했다.

우리측 선수단의 평양 방문은 2013년 9월 아시아클럽역도선수권대회와 2015년 국제유소년축구대회, 지난해 4월의 아시안컵 여자축구 예선 등을 계기로 이뤄졌다. 그러나 체육회담을 여는 등의 양측 정부 간 교류는 없었다.
 

지난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 단일팀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에 부활한 남북 스포츠교류···평창올림픽 이어 패럴림픽도 공동입장

남북관계 경색으로 휴업 상태던 스포츠 교류는 체육회담의 재개로 11년 만에 이어지게 됐다. 마지막 남북 체육회담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논의하기 위해 2007년 개성에서 열렸다.

IOC와 남북은 지난 1월 20일 스위스 로잔에서 '올림픽 회의'를 열고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의 남북 공동 입장을 최종 확정했다.

이에 역대 10번째이자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 이래 11년 만의 남북 공동입장이 성사됐다. 남북 선수단은 지난 9일 오후 8시 강원도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코리아(KOREA)'라는 명칭으로 한반도기를 흔들며 마지막 차례로 함께 입장했다.

남북 선수단은 개최국 국기인 태극기를 게양한 뒤 마지막으로 공동 입장했다. 북한이 한국과 공동 입장하면서 역대 최다인 전체 참가국 92개국 가운데 맨 마지막인 91번째로 입장한 것이다. 참가국 입장은 알파벳 순이 아닌 가나다 순으로 진행됐다.

공동입장 때마다 남북이 '남녀북남→남남북녀'로 번갈아 공동기수를 세운 전례에 맞게 이번에는 '남남북녀' 순서에 맞췄다. 남한에선 봅슬레이 원유종 선수, 북한에서는 여자 아이스하키 황충금 선수가 공동입장 기수로 나섰으며 배경음악으로는 아리랑이 선택됐다.

또한 남북은 평창올림픽뿐 아니라 오는 3월 9일 열리는 평창동계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개·폐회식에서도 공동입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앤드루 파슨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위원장은 지난 2일(현지시간) "평창동계패럴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북한 장애인 노르딕스키의 마유철(27), 김정현(18)에게 와일드카드를 제공한다"며 "한국과 북한은 개폐회식에 공동입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북한의 첫 패럴림픽 출전과 함께 사상 최초의 남북 공동 입장도 이뤄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