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하는 北美… 팽창하는 긴장감

2018-02-10 18:35
평창서 만나는 북·미 외교특사… 대화재개 둘러싸고 신경전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뒤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이번 올림픽에는 북핵 문제를 두고 대립각을 세운 미국과 북한의 고위급이 함께 참석해, 평창을 외교무대로 치열한 '수 싸움'을 펼쳐질 전망이다. 

북미 양측은 평창올림픽 계기에 대화 물꼬를 틀지 두고 서로의 의중을 떠보는 고도의 신경전, '밀당'(밀고 당기기)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양측 모두 이번 기회를 놓칠 경우 '상황관리'가 어려워지고 외교적 출구도 찾을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과 북한의 특별한 '외교특사'가 한국에서 조우하면서 이들이 쥐고 있는 정치적 메시지와 향후 북미 관계에 미칠 여파에 눈길이 쏠린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9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2함대에서 탈북자와 면담하고 있다. 2018.2.9 [사진공동취재단] 


◆이방카·웜비어父, 평창으로… 펜스美부통령, 천안함 참관하고 탈북자 면담

평창올림픽에는 미국의 특별한 외교사절이 평창을 찾는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의 방남 소식이다. CNN과 AP통신 등 외신은 백악관 측을 인용, 이방카 선임고문이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미국 대표단을 이끌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백악관 선임고문 직함을 가진 이방카는 미국의 핵심실세로 꼽힌다. 그는 좌충우돌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다양한 국제 무대에서 활동을 하며 세계 최고의 ‘뉴스 메이커’이자 ‘미디어의 연인'이라고 불린다.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미미했던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보다도 눈에 띄는 외교 행보를 보인 이방카는 '퍼스트 도터'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현안을 조언하는 등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번 올림픽에서 그는 폐막식에 얼굴만 비추는 만큼,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오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방카는 별다른 정치적 행사 참석없이 폐막식에만 참석하지만, 그는 방한 소식만으로도 외교적 위상을 과시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고위급 대표단으로 나선데는 이방카의 방한 사실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에서 꺼낸 또 다른 특별외교 사절은 바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친인 프레드 웜비어 씨다. 오토 웜비어는 여행차 방문한 북한에 억류됐다가 지난해 의식불명 상태로 귀국한 뒤 사망해 북한 인권문제에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프레드 웜비어 씨는 미국 대표단장으로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초대를 받아 9일 진행된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펜스 부통령이 프레드 웜비어 씨를 초청한 것은 인권 문제를 부각해 대북 압박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이에 앞서 펜스 부통령은 천안함을 방문하고 탈북자들과의 면담을 진행하며 북한을 향한 직간접적인 압박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강경한 대북 압박 기조를 드러내고 있지만, 미국 역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미 대화 모멘텀이 열리길 바라는 모습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9일 본지와의 전화를 통해 "미국도 지금 평창올림픽 기간동안 (북한과의) 대화 모멘텀 만들고 싶어 한다"며 "올림픽이 끝난 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가 실험을 하고 발사해서 완성하게 된다면 미국도 원치 않는 군사 옵션을 꺼내야 하는 등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9일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과 사전 리셉션장에서 북미 간 싸늘한 냉기가 흘렀다. 미 언론은 펜스 부통령과 북한 측 접촉이 불발되면서 일말의 기대를 모았던 북미대화 성사 가능성이 사실상 희박하다고 해석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된 '건군절' 기념 열병식을 이날 오후 5시30분(북한시간 5시)부터 녹화중계했다. 사진은 북한군 명예위병대를 사열하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북미 대화 키 쥔 '백두혈통' 김여정… 평화올림픽 의식해 열병식 규모 축소 가능성도

지난해까지 잇따른 미사일 도발과 핵실험으로 한반도 긴장수위를 높였던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결정하고 대규모 대표단을 보내며 국제사회를 향해 새로운 제스처를 취해왔다.

대표단의 단장은 대외 '얼굴마담'으로 불리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맡았다.

1928년생으로 올해 90세인 김영남은 헌법상 국가수반이다. 그는 비록 핵심 권력을 휘두르지는 못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형식적으로 북한을 대표해온 인물이다.

김영남이 단장을 맡고 있지만, 사실상 대표단의 활동을 좌우하고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세 역할은 김여정이 맡았다. 실제로 그는 10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나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고 북한 방문 초대장을 건넸다. 

북한은 고위급대표단에 김정은 정권의 실질적 2인자로 불리는 김여정을 일원으로 파견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북한 김씨 일가를 일컫는 '백두혈통' 일원이 남쪽 땅을 밟는 것은 김여정이 처음이다.

김영남, 김여정에 외에 북한 예술단을 이끌고 있는 현송월도 북미 외교전의 외곽에서 화려한 지원을 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번 고위급 대표단의 키맨은 김여정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그는 문

정 연구실장은 "김정은이 여동생 김여정을 고위급 대표단에 포함시킨 것은 그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그만큼 진정성이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라며 "남한의 발전상 및 남한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작년 10월에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1987년생인 김여정은 만 30세의 젊은 나이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됐다. 이에 북한을 이끌어가는 30명 내외의 핵심 그룹에 공식적으로 포함됐다.

작년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되기 전까지만 해도 김여정은 각종 공식행사에서 김정은이 수상자들에게 수여할 메달 등을 김정은에게 전달하거나 김정은이 받은 꽃다발을 건네받는 등 보조적인 역할들을 주로 수행했다. 

그러나 후보위원에 선출된 후 김여정은 김정은과 나란히 서서 대화하면서 걷거나 주석단의 맨 앞줄에 앉는 등 현저하게 높아진 위상을 타고 이번 방남길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이 11일까지 한국에서 머무르며 내놓는 말들이 향후 북미대화 가능성을 포함한 한반도 정세변화로 이어지는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현욱 교수는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겠다는 실질적 조치를 보여야 미국이 요구하는 핵 동결·폐기에 대해 고려할 수 있다'는 식으로 공을 다시 미국에 넘길 가능성이 보인다"고 관측했다.

한편 북한도 대외 외교 상황에 고심한 흔적도 포착되며 이 행동이 향후 한반도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관심이 모인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8일, 북한은 평양에서 정규군 창건일 70주년 열병식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열병식 규모가 과거에 비해 축소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북측이 평창올림픽을 고려해 우리 측에 성의 표시를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북한은 외신의 방북 취재도 허용하지 않고 열병식을 과거와 달리 생중계하지 않고 녹화방송만 내보냈다.

그럼에도 북한은 강력한 무기를 충분히 과시했다고 전문가들은 평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은 "침략자들이 신성한 우리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0.001㎜도 침해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열병식은 세계적인 군사 강국으로 발전한 강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상을 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북한은 열병식에서 신형 고체연료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등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