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 모습 바꿔 놓은 할하강
수 백 Km를 나무 한 그루, 높은 언덕 하나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늘과 초원으로만 이어지던 동몽골의 대평원이 하나의 강을 만나면서 그 모습도 색깔도 바뀌기 시작한다. 몽골 동부에 있다는 고올리(고려) 성터를 찾아가는 길에 만났던 이 강의 이름은 할하강이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지금까지 지나온 곳은 황금색 들판인데 비해 지대가 낮은 강 건너편 들판은 녹색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강은 초원을 기름지게 만든다. 할하강을 건너자 그렇게 귀하던 나무들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고 초원의 색깔도 진한 녹색으로 변했다.
지나온 평원이 황량한 황무지였다면 다가오는 평원은 풍요의 땅처럼 느껴졌다. 땅이 기름지면 사람이 모여 살기 마련이어서 강 건너편에는 마을은 물론 초원에서 보기 드문 과수원까지 들어서 있었다. 마을의 이름은 할힌골 솜(郡)이다. 大흥안령 산지에서 발원한 할하강은 230여 Km의 길이로 흐르면서 동 몽골 지역을 거쳐 보이르 호수로 합쳐진다.
▶몽골 최대종족 할하족의 기원지
할하강의 발원지인 흥안령은 바로 몽골족이 초원으로 들어오기 전 살았던 몽골족의 기원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몽골족이 이 강을 상징적인 강 가운데 하나로 여길만하다. 초원의 모습을 바꿔 놓은 이 할하강이나 할힌골솜 역시 몽골인들에게는 상징적인 강이고 마을이다.
바로 이곳이 현재 몽골의 핵심종족인 할하족을 나타내는 이름이 강과 마을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할하(khalkha)족은 자신들이 칭기스칸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몽골의 최대종족이다. 현재 몽골인들의 80%가량이 바로 이 할하족이다.
그래서 자신들을 진정한 몽골 문화와 역사의 수호자로 여기고 있다. 할하족의 근거지는 몽골 영토를 놓고 보면 가장 동쪽 끝에 해당한다. 할하족은 15세기 들어 할하강 유역에 정착한 부족들을 일컫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논강과 켈룰렌강, 툴강 등 몽골의 3대 강 유역에 거주했던 종족들을 통칭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보는 편이 옳다. 그래서 할하족은 하나의 종족이 아니라 몇 개의 종족이 통합된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할하’란 방어물 또는 막이라는 의미의 ‘할하 부흐’에서 나온 말이다.
할하가 몽골 부족을 지키는 위치에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들은 16세기 들어 지금의 몽골 동쪽 끝에서 중앙부까지 진출해 東몽골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할하몽골은 西몽골의 지배자로 성장한 오이라트와 몽골의 주도권 다툼을 벌이게 된다.
▶칭기스칸 후손의 땅 東 몽골
할하몽골이 주도권을 잡기 전까지도 몽골의 동쪽은 칭기스칸의 후손인 몽골족의 땅이었다. 중국대륙에서 다시 초원으로 밀려온 몽골족의 대부분은 몽골 땅에 있던 자신들의 종족과 합쳐져 주로 몽골 초원의 동쪽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이들을 흔히 東몽골이라 부른다.
나중에는 東몽골을 할하몽골이라고도 부르지만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칭기스칸의 후손이 다스린 땅이라는 의미가 동몽골이라는 명칭 속에 포함돼 있다고 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그래서 당분간 할하몽골이라는 명칭은 보류해 두고 동쪽의 칭기스칸 후예들을 동몽골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하자.
▶서몽골 세력의 진원지 헙스걸
東몽골이 있다면 당연히 대칭 되는 개념인 西몽골도 있을 것이다. 최대길이가 134Km나 되는 몽골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가 홉스골(khovsgol)호수다. 지금은 몽골의 최대 관광지로 이름나 있는 그 곳은 주변의 뛰어난 경관과 수정 같이 맑은 호수 그리고 다양한 야생동물의 군락지로 몽골여행의 백미로 손꼽히기도 한다.
홉스골 지역은 두 개의 큰 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그 하나는 몽골지역에서 발원해 러시아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멀리 북극해의 일부인 카라해(Kara Sea)로 흘러드는 예니세이강(Enisei River)이다. 몽골의 땅에서 발원해 북극해로 흘러드는 예니세이강의 길이는 무려 5,540 Km, 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 가운데 하나다.
헙스걸 지역에서 발원하는 또 하나의 강은 셀렝가강(Selenga River) 이다. 이 강은 몽골에서 가장 긴 강으로 바이칼호수로 흘러 들어간다. 강의 전장은 992Km지만 이 강으로 흘러드는 수계(水系)를 모두 합치면 장장 2만 Km나 된다.
▶‘숲속의 사람들’ 오이라트
두 개의 큰 강이 발원하는 헙스골 근처지역은 몽골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종족, 오이라트(Oirats)가 일어선 땅이기도 하다. 몽골의 서북쪽에서 일어난 오이라트를 역사는 흔히 할하 몽골인 東몽골과 구분해 西몽골이라 부르고 있다. 동몽골지역이 초원지대라면 서북몽골지역은 주로 삼림지대다.
오이라트라는 종족의 이름에도 삼림지대의 특성이 나타난다. ‘오이’는 숲을 가리킨다. ‘라트’는 ‘아라트’에서 나온 말로 사람을 지칭한다. ‘오이’+‘라트’는 ‘숲의 사람들’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즉 몽골의 서북쪽과 바이칼 주변의 삼림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통칭해서 오이라트라 부를 수 있다는 얘기다.
대몽골제국 출범 후 칭기스칸의 큰아들 주치는 1207년 바이칼호 주변의 키르키즈인들을 복속시킨 것을 시작으로 오이라트, 브리야트, 바르군 등 이른바 ‘숲 속에 사는 사람들’을 대거 귀순시켜 칭기스칸으로부터 칭찬을 듣는다. 이 때 복속된 ‘숲 속의 사람들’ 대부분을 오이라트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몽골과 중국의 대립, 동서 몽골의 투쟁
북원시대 이후 몽골의 역사는 크게 보면 몽골과 중국의 투쟁사다. 하지만 몽골 자체를 놓고 보면 칭기스칸 후손인 동몽골과 오이라트의 서몽골 사이에 벌어진 초원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중국과의 대립이 동서로 경계선을 그어 놓았다면, 동몽골과 서몽골 사이의 주도권 다툼은 남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만들어 놓았다는 얘기다. 칭기스칸에서 쿠빌라이에 이르는 세계제국 때와는 달리 이후 東․西몽골 사이의 투쟁과 몽골과 중국 간의 투쟁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생소하다.
별로 알려지지도, 또 관심이 많지도 않은 데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지명도 생소해 얼른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것이 적지 않은 고민거리다. 무너져 내리는 역사도 영광의 역사 못지않게 의미가 있다. 가급적 최소한의 이름과 지명을 등장시키면서 그 흐름을 짚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