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급기밀' 김상경 "꿈에서 만난 故홍기선 감독, '흥행' 여부 물었더니…"
2018-01-24 00:11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1급기밀’(감독 홍기선) 역시 김상경의 지난 필모그래피(작품 목록)과 멀지 않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봉인된 내부자들의 은밀한 거래를 폭로하는 범죄실화를 담은 영화에서 그는 항공부품구매과 중령 박대익을 연기한 것.
특히 영화는 실제 사건인 2002년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 폭로와 2009년 MBC ‘PD수첩’을 통한한 해군장교의 방산비리 폭로를 모티프로 제작돼 화제를 모았다.
“저는 시나리오를 볼 때, ‘감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어떤 의미로든 제가 감동을 받으면 시작하는 거죠. ‘1급기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소재보다는 이야기에 큰 감동을 하였죠. 성실한 군인이 사회적 비리를 맞닥뜨렸을 때, 어떤 위협도 참고 이겨내면서 진실을 선택했다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거기다 첫 번째 방산비리를 담은 영화라니. 얼마나 큰 의미에요?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김상경의 생각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사회 고발적 메시지를 담은 데다가 연예계 블랙리스트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었으니. 그런 우려가 전혀 근거 없이 느껴지진 않았다.
“‘왜 걱정을 하지?’ 그렇게 생각했었죠. 시나리오도 재밌고, 군 비리 같은 건 박근혜·이명박 정부에서도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부분이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친정부적인 영화’일 수도 있는 건데 왜들 그렇게 걱정하나 싶었죠. 그런데 펀딩도 안 된다고 하고, 개봉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제가 순진했던 거죠. 하하하.”
그러면서도 김상경은 “‘1급기밀’은 진보·보수로 나뉘는 내용이 아닌 ‘안보’에 대한 영화”라고 말했다. “진보와 보수가 함께 손잡고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상경은 故 홍기선 감독의 부재가 더욱 안타깝다고 전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감독이 결정해야 할 부분이 많잖아요. 먼저 돌아가신 게 안타까울 따름이죠. 사실 제가 봤을 때, 감독님은 ‘1급기밀’로 많은 변화를 꾀하고 싶으셨던 것 같거든요. 늘 우리에게 ‘200만 관객은 보장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 하셨고 영화를 찍는 내내 즐거워하셨었어요. 많이 바뀌려고 노력하셨고 틀에서 벗어나게끔 영화를 찍은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의 편집본이 더 궁금해요. 지금 편집본도 무척 훌륭하지만, 故 홍기선 감독님만의 영화를 보고 싶거든요.”
김상경은 故 홍기선 감독을 추억하며 “쌀집 아저씨처럼 푸근하고 따듯한 사람”이라고 연거푸 칭찬했다. “잊지 못할 기억을 주신 분”이라고 덧붙이면서.
“사실 현장에서 감독님과 안 맞아서 싸우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감독님이 너무 착한 사람인 걸 알아서 뒤돌아서면 미안하고 그랬거든. 그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더 가슴이 무너지더라고. 너무 너무 속상했어요. 어떤 날은 감독님이 꿈에도 나왔어요. 딱 두 번. 감독님 표정이 너무 좋으시더라고요. ‘감독님, 이 영화 잘 될까요?’ 물었더니, 감독님이 ‘우리가 이긴 거죠!’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작품이 나온 것 자체가 이긴 거라고. 그 꿈이 오래 마음에 남아요. 아주 오래.”
김상경의 말처럼 ‘1급기밀’이 가진 의미는 남다르다. 방산비리를 처음으로 다룬 작품이고 또한 정치성향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과 정의로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부고발자를 공익제보자라고 부르더라고요. 저는 그 말도 참 좋아해요. 극 중 박대익은 배신자 취급을 받는데, 이 사람이 나쁜 일을 한 게 아니라 올바르게 고치려고 하는 거잖아요? 방산비리도 중요하지만 저는 이 영화로 공익제보자들이 더욱 보호받고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라요.”
‘1급기밀’은 공익제보자가 처한 상황과 그들의 고통을 실감 나게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극 중 박대익이 겪는 상황들은 실제 사건, 실제 인물들이 겪은 것과 같다고.
“2009년 군납 비리를 폭로한 해군 김영수 소령님이 영화를 보러 와주셨어요. 시사회를 마치고 제게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얼굴이 달아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사실 김영수 소령님이 걱정이 많으셨거든요. 홍 감독님과 오래 작품을 준비하면서도 ‘영화화가 안 될 거다’, ‘개봉하지 못할 거다’라고 생각하셨대요. 여러 난항을 겪으셨기 때문인지 영화가 마친 뒤 감동에 젖어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상경은 강직하고 올곧은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다양한 작품 속, 그가 연기한 인물들의 성격의 공통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질하고 평범한 남자, 악랄한 사이코패스 등 다양한 인물을 연기해왔던 터. 김상경에게 “악역에 대한 갈증은 없느냐”고 물었다.
“쓰기 나름이겠지만 제게 들어오는 시나리오 중 악역은 거의 없어요. 이에 대한 걱정도 물론 있었죠. 그러던 중, 안성기 선배와 대화를 나눴어요. ‘선배는 왜 악역 같은 걸 안 하세요?’ 그랬더니 선배님이 ‘좋은 거 하기도 바빠’라고 하시더라고요. 하하하. 선악에 대한 구분을 두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캐릭터보다도 시나리오가 더 중요해요. 마음이 가느냐, 감동을 하느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가 더 중요한 거죠. 이제 곧 ‘사라진 밤’이 개봉해요. 거기에서도 형사 역인데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아요. ‘1급기밀’과도 다른 모습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