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화랑③]화랑도의 핵심, 풍류를 아는가
2018-01-23 15:14
# 3-4년 과정, 책을 읽고 무술을 익히며 명승 답사
울산의 천전리 서석에 새겨진 글을 보면 ‘술년 6월2일에 화랑수련을 졸업했다(永郞成業)’는 기록이 나온다. 화랑 수련은 일정한 기간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3년-4년 정도의 기간을 잡고 있다. 커리큘럼에 대해서는 강독 교과(오경, 사기, 한서, 삼국지, 춘추)와 도덕 교과, 무술 교과, 시와 가무, 명승 답사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 향가를 공부하는 시간도 있었을 거라는 짐작도 있다.
화랑도 교육은 이후 왕실에서 주도한 교육에 비해 짜임새를 덜 갖췄을 수 밖에 없다. 각 화랑의 리더십이나 교육경험에 따라 상당히 수업 방식이 달랐을 수도 있다. 대체로 인성교육과 경서 강독을 병행하며 신체 수련을 중시하는 프레임을 유지했을 것이다.
화랑 교육은 지식과 기술의 전수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부심과 자율성을 최대한 일깨워 그들이 스스로 어떤 결단과 결론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는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복색의 옷을 입고, 전국의 명승을 유람하면서 자연을 즐기고 우정을 키우는 화랑도들을, 신라 왕실에서는 굳이 국가교육으로 포섭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 자율적인 기강과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규제한 흔적도 없다. 정부가 화랑도의 순기능을 믿었고, 그것이 국난 시기에는 큰 힘이 되었다. 화랑들은 스스로 인격 도야를 위해 경전을 읽고 토론을 했으며, 또 학업의 성취를 위해 뜨거운 맹세를 나누기도 했다. 무예수련 또한 국가를 지키기 위한 충도의 자발적 발로에 가까웠다. 그들은 어떻게 가슴 속에 죽음도 불사하는 강렬한 자부심을 지닐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는 문(文)이라는 ‘지식’과 무(武)라는 ‘기술’에 앞서, 풍류도의 수련이 있었다. 풍류도는 단군 이래로 겨레정신을 응결한 가르침의 정수이다. 풍류에 관해 최치원은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이것을 풍류라고 한다.
이 가르침을 설치한 근원은 선(仙)의 역사에 상세히 실려있다. 실로 이는 유교 불교 도교 3교를 포함한 것으로 모든 사람과 접촉하여 이를 교화하였다. 집에 들어와 효도하고 나아가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니, 이는 공자의 뜻이며, 또한 모든 일에 거리낌없이 대하면서도 무언으로 실천하는 것은 주나라 노자의 가르침이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행실만 믿어 행하는 것은 석가의 교화이다.”
최치원은 풍류를 설명하면서 우리나라의 현묘한 도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풍류가 중국과 인도에서 들어온 유교와 노장사상, 그리고 불교를 모두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공자, 노자, 석가의 가르침이 풍류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친절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대목은, 우리나라의 전통사상인 풍류도가 얼마나 포용력이 있으며 유연한지에 대한 강조이다.
또 그는 풍류도의 근원은 선(仙)에 있다고 분명히 밝혀놓고 있다. 선(仙)은 하늘과 인간, 자연과 인간이 직접 소통하는 천손(天孫, 하늘의 자손)사상을 함축한 말이다. 하늘과 인간, 혹은 자연과 인간이 소통의 채널을 잃어버린 것은, 인간의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마음이 어리석어졌기 때문이며,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선 자연을 향해 심신을 열어놓고 하늘에 대해 겸허해지는 것이라는 점이 풍류도의 빛나는 가르침이다.
# 도대체 풍류는 무엇인가
풍류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낱말의 개념과 조금 다르다. 풍류는 단순히 흥(興)을 지닌 기분이 유들거리는 형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풍류(風流)는 바람과 물을 가리킨다. 바람은 허공 속에서 노니는 것이며, 물은 하늘과 지상을 넘나들며 노니는 것이다. 바람은 불고 물은 흐른다. 그것은 허공과 여백이 있어야 불고 흐른다. 바람과 물이 허공과 여백 속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형상이 바로 풍류의 본질이다.
나사가 헐거워지면 우리는 '나사가 논다'라는 표현을 쓴다. 여지가 있어야 헐거워지며 헐거워져야 좀 더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사물의 이치가 '논다는 것'에 담겨있다. 바람이 허공에서 놀고 물이 우주 속에서 놀듯, 화랑이란 존재는 신과 인간계 사이를 자유롭게 노니는 것을 커리큘럼 속에서 가르쳤다. 이것이 화랑교육의 놀라운 점이다. 이 자유와 자율과 자존감 속에서 왕국을 목숨 바쳐 구하고 나라의 기틀을 일신하는 힘을 키웠다. 화랑정신은 풍류정신이며, 이른 바 제대로 '노는' 정신이기도 하다.
화랑은 스스로 하늘의 자식임을 깨닫고 사생(死生)을 뛰어넘어 옳은 것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그들이 명산을 찾아 내달린 것은 그저 우정의 추억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풍류도의 진면목을 만나기 위한 확장교실이었다. 풍류도가 유교, 불교, 도교까지를 모두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종교나 학문의 깨달음들이, 오히려 우리의 큰 사상(풍류)의 서까래가 되고 마루가 되고 기둥이 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유교는 다스림 속의 풍류이며, 불교는 속진(俗塵)을 벗어남의 풍류이며, 도교는 개의치 않는 자유로움의 풍류이다.
# 지금 우리의 교육계가 머리를 치고 반성해야할 대목
화랑을 개창한 진흥왕은 ‘천성풍미(天性風味) 다상신선(多尙神仙)’한 군주였다. 하늘의 품성을 지니고 자연의 맛을 알아, 신과 소통하던 옛일을 우러르던 지도자였다는 얘기이다. 이것이 우리 겨레가 지녀온 풍류의 원형이라고 할 만하다.
현대의 언어로 말하자면 풍류는, ‘친환경 비전’과 ‘위대한 소명의식’의 퓨전같은 것이 아닐까. 또 풍류에는 ‘논다’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신라를 강력하게 만든 교육의 바탕을 보면 가르침과 놀이가 다르지 않았다. 이 또한 우리 교육이 머리를 치며 반성해야할 문제가 아닌가. 이상국(아주T&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