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화랑①]이 땅 최고의 무형콘텐츠, 화랑을 아는가
2018-01-22 09:25
미진부와 비차부, 어린 화랑들이 새긴 금장리 각석의 비밀
# 충도(忠道)와 학문에 잘못 있다면 천벌을 받아도 좋다 -금장리 각석의 비밀
신라 진흥대왕 13년(552년) 6월 16일.
미진부(未珍夫)와 비차부(比次夫)는 지금의 경주 현곡면 금장리 산기슭에서 각석(刻石)을 한 뒤 맹세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풍월도(風月徒, 화랑도의 전신)의 선랑(仙郞)이었다. 풍월도는 신라가 촌락공동체 시절부터 존재하던 청년조직으로, 학예와 무술을 익히며 우정을 다지고 정치적 실력을 키우는 자생적 그룹이었다. 미진부와 비차부는 거칠부 장군이 운영해온 백좌(百座) 풍월도의 으뜸 학생이다.
거칠부는 내물왕의 5대손으로 어린 시절 중이 되어 사방을 떠돌았는데 고구려에 들어가 승려 혜량(惠亮)이 호국불교를 주창하는 설법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545년에 거칠부는 왕명을 받아 ‘국사(國史)’를 편찬했고, 이후 나라를 키울 인재들을 모아 백좌 풍월도를 만들었다. 신라의 인재들이 구름같이 몰렸고 그중에는 미진부와 비차부도 있었다. 551년 거칠부 장군은 고구려를 침공해 10개 군을 탈취하는 전과를 올리는데, 이때 어린 미진부와 비차부도 참전해 용맹을 떨친다.
두 사람이 금장리 각석을 새긴 것은 바로 그 이듬해였다. 이들은 그 무렵 황룡사에서 거칠부장군이 고구려에서 모셔온 고구려승 혜량의 특강을 들었다. 혜량은 ‘국난이 닥칠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평화로운 때에는 학문을 위해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일만큼 젊은 인재에게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끓어오르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 두 사람은 맹세를 돌에 새기기로 하였다. 미진부는 법흥왕의 외손자로, 이후 미실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며, 비차부는 그의 금란지교(金蘭之交)였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늘 앞에 맹세한다.
"지금부터 3년 뒤에는 충도(忠道)를 굳게 지켜 잘못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서약에 어긋남이 있으면 하늘로부터 큰 죄를 받을 것임을 다짐한다.
만약에 나라를 불안케 하는 큰 난세가 닥치면 행동을 할 것임을 맹세한다.
또 앞서 신미년 7월22일에 크게 다짐한 바 있는 시경, 상서, 예기, 좌전을
3년 동안 모두 익힐 것을 행동한다."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
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 可容
行誓之 又別先辛未年 七月卄二日 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 우리는 하늘이 낳은 사람들이다, 신라 신국(神國)의 자부심
작년에 풍월도에 들어간 이들은, 고전을 섭렵하며 틈틈이 무예의 기틀을 닦았다. 고구려 전투 때 장군은 “아직 학문의 정진이 더 필요하다”면서 이들의 참전을 말렸는데, 미진부는 “학문을 하는 것은 뜻을 펴기 위함입니다. 행동할 때 행동하지 않는다면 어찌 선랑이라 하겠습니까”라고 말하며 기어이 칼을 차고 말에 올라탔다.
전쟁 때문에 잠시 책을 놓았지만 돌아온 뒤에 그들은 다시 학문맹세를 하였다. 이번에 황룡사 강의를 들은 뒤 맹세를 적어 새기는 뜻은, 앞으로 3년간의 만만찮은 커리큘럼을 소화해야 하는 일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충도(忠道)였다. 신라 전성기 무렵, 나라에 대한 충성은 구성원이 지켜야할 최상의 도리(道理)로 인식되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국가와 공동체의 안위를 책임지는 호국적 인생관을 다듬는 일. 풍월도는 신라를 곧게 세운 힘이 된다. 그런데 “죽어도 좋다”라고 맹세하지 않고, “천대죄(天大罪, 천벌)를 받아도 좋다”고 말한 것을 주목하라.
나라를 위한 거리낌 없는 희생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스스로 하늘과 통하고 있다는 천신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늘이 낳은 사람들이다.” 선랑들은 단군 이래 이 겨레가 지녀온 뿌리깊은 자부심을 온전히 계승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상에서의 죽음이나 모진 형벌보다, 하늘의 벌을 더 중요시하고 두려워한 것이다.
풍월도는 바로 화랑정신의 원본(原本)이며 우리 겨레의 내면을 흐르는 집단 염색체같은 것이었다. 위의 스토리는 1934년 경주에서 발견된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의 내용을 바탕으로 삼아, 당시 실존하던 인물들을 대입하여 실감을 돋운 것이다. 화랑정신이 꽃피던 시절의 생생한 공기를 빨아들였다면, 이제 이 땅의 ‘정신보물’인 화랑을 재발견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