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붓(筆)과 댓글

2018-01-15 05:00
서함원 전통문화연구회 상임이사

조선 후기 명재상 채제공(蔡濟恭·1720~1799). 정조 임금이나 다산 정약용 같은 '스타'들에 관한 글을 읽으면 꼭 만나게 되는 인물이다.

그는 71세에 영의정·우의정이 공석이던 당시 조정에서 3년간 좌의정을 맡았는데, '붓을 사용할 때 경계해야 할 일'을 적은 <필명(筆銘)>이라는 글을 남겼다. 

"善用汝(선용여)면 天人性命(천인성명)을 皆可以描得(개가이묘득)하고 不善用汝(불선용여)면 忠邪黑白(충사흑백)을 皆足以幻易(개족이환역)이니라."(너를 잘 사용하면 세상의 이치를 모두 표현할 수 있지만, 너를 잘 사용하지 못하면 진실과 거짓이 모두 뒤바뀔 수 있다.)

여기서의 汝는 '너 여'자인데 영어로 하면 'you'다. 이 글에서 汝는 물론 붓(筆)을 뜻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직후 '악플'(악성 댓글)이 화제가 됐다. 일부 기자의 질문은 질문이라기보다는 호소 내지는 사정사정에 가까웠다. 대통령이 그에게 "담담하게 받아들이시라"고 답하긴 했지만, 악플의 악성(惡性)이 그대로 둬서는 안 될 현실임을 감안해 보면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다.

필자는 학창시절 연필과 만년필로 글을 썼고, 사회에 나와서는 볼펜, 만년필을 거쳐 88올림픽 즈음부터 컴퓨터로 일을 해온 세대다. 정년퇴직할 때까지도 댓글에 시달린 경험은 없었다.

요즘 인터넷 상에 달리는 댓글은 이 나라의 살벌함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인신공격이나 비난 정도는 벌써 넘어갔고, 입에 담기 힘든 악다구니 욕설로 넘친다. 벌떼가 일어나고 개구리가 와글와글(蜂起蛙鳴, 봉기와명)하듯 하는 꼴이 험하다. 게다가 한글을 엉망으로 망치는 표기나 표현이 마구 쏟아지고 있으나 아무런 대책이 없다. 안 보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악플 소동을 보며 300년 전 이 땅에 살던 선비가 남긴 '글 쓸 때 경계하는 마음'을 떠올린 이 글이 시대착오가 아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