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호칼럼] 신골품제(新骨品制)
2017-12-27 20:00
[박장호칼럼]
신골품제(新骨品制)
개인의 인생과 행동을 좌우하는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일까? 아니면 환경적인 요인이 더 클까? 우리 풍속에 녹아 있는 말들을 상기해보면 우리 조상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은 유전형질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아무리 밭이 좋더라도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날 수는 없다고 본 것 같다. 사람은 어떨까? ‘명가의 후손’이라는 말이 모든 것을 함축하지 않을까 한다. 명문가에서 태어난 사람은 행동거지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인데, ‘떡잎이 다르다’ 또는 ‘싹수가 노랗다’라는 표현은 애가 대여섯 살에 하는 것만 봐도 대충은 그의 미래 인물상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명문가의 후손이지만 파락호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범이 고양이를 낳았다’라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해 버린다.
이런 면으로 볼 때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신라의 골품제(骨品制)는 좀 특이했던 것 같다. 고구려, 백제와는 다르게 아예 뼈의 등급을 매겨 놨다. 부(父)와 모(母)가 둘 다 왕족일 경우 성골(聖骨), 한쪽만 왕족이면 진골(眞骨), 그 이외에 6두품, 5두품, 4두품, 평민으로 사람의 머리(頭)에 품격(品格)을 매겨놓았다. 그리고 골품제에 따라 집의 넓이도 차등을 두고 옷의 색깔, 쓸 수 있는 우마차도 달리 규정해 놓았다. 신라는 개인의 일생과 역량은 환경과 교육에 상관없이 그 사람의 뼈에 이미 다 담겨 있다고 본 것 같다.
이런 사회에서는 태어나는 순간에 나의 신분이 미래에까지 연결되고 나의 능력이 골품이라는 환경을 벗어나서 발현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당나라에서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 토황소격문을 써 문재를 널리 떨친 최치원도 신라에 돌아와서는 6두품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능력에 걸맞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인도에서는 아직까지도 카스트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제사를 담당하는 최고위의 브라만이라는 계층 아래 그림자만 밟아도 오염되어 부정을 탈 수 있는 달리트라는 불가촉천민이 존재한다. 법적으로 차별은 없어졌다고 해도 인구의 15%에 해당하고 카스트에도 못 끼는 불가촉천민이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기에는 카스트라는 사회구조의 벽이 너무 높은 것이다. 몇 해 전에는 서울대 공대에 재학 중이던 학생이 공고화된 계급의 벽을 절감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극단적으로 결정함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줬다. 그 이후 우리는 사회를 질식하게 만드는 환경을 개선하기보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쓰면서 살고 있다.
최근에는 한화그룹의 3남이 김앤장 변호사들과의 저녁자리에서 “니 아버지 뭐하시냐?”라고 한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보려면 일단 조부모와 부모의 이름부터 보내 결격 여부 통과해야만 응시자격이 생겼고, 양반가의 경우 가문의 단합을 위해 항렬자를 썼기 때문에 이름만 보면 뉘 집에 누구인지를 알아보니 “부친 함자가 어떻게 되시냐?”는 물음은 나의 행동거지로 나뿐 아니라 집안과 문중 전체를 평가 받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질문이었다. 한화그룹의 3남은 무슨 의도로 상대방 변호사들에게 “니 아버지 뭐하시냐?”라고 물었을까? 집안의 아우라를 동원하지 않으면 김앤장 변호사들이니 맞짱이 어려운 상황이었을까? 이런 일이 한번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만나는 사람의 배경을 확인하고 취권을 휘둘렀던 것일까?
사건은 9월에 있었다 하고, 그것이 새어나와 언론과 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1월 말경인 것 같다. 두달 동안 그냥 묻혀 있던 것이 갑자기 왜 새어나왔을까? 보통의 경우 10대 중·고생이 싸움이 붙으면 싸움이 끝난 후 화해하거나 상처가 심하면 가해자가 치료비를 부담한다. 질풍노도의 시기임을 감안해서 심하지 않으면 경찰이나 검찰이 관여하지 않는다. 정신적·물리적 집행유예의 시기이다. 그리고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무지 혼이 난다. 억지로라도 화해하고 어떤 경우는 더 친해지는 경우도 있다. 성인이 되면 완력은 거의 사라지고 점잖아지지만 그래도 간혹 혈기 방장하여 술이 가미된 저녁자리에서 잔이 엎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주위에 피해가 없다면 당사자들끼리 해결한다. 거기에 이상한 사(邪)가 끼어드는 경우가 있다. 패거리를 불러 위세를 과시하거나 피해를 부풀려 한몫 보려는 일들이 생긴다. 신사들이 자존심을 걸고 벌이는 황야의 결투와는 정반대되는 일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자들은 전문용어로 양아치라고 불린다. 토속성 짙은 문학작품이나 대중영화에 감미료로 등장하는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귀’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김앤장 변호사들은 왜 당하고도 가만 있었을까? 폭행죄는 폭행을 당한 사람이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형법상의 반의사불벌죄이니 고소가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다. 서로 합의해도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국가 공권력이 처벌하는 상해죄와는 범죄구성요건이 다른 것이다. 그렇지만 20대의 젊은 피들이 참기에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우라’는 가슴 떨리는 울림이 내면에서 해일처럼 밀려 왔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