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소비자들 "아이폰X 비싸고 혁신 없다" 외면

2017-12-27 06:00
공급부족 우려했던 것과 대조적... 물량 남아돌고 권유 쉽지 않아
갤노트8·V30, 오디오·카메라 성능 입소문... 삼성·LG 반사이익

26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이통사 매장에서 아이폰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김지윤 기자]

 
"아이폰 품질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 제기되면서 갤럭시노트8을 찾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 250대 정도 개통했는데, 그 중 갤노트8이 70% 이상입니다."

26일 방문한 서울 종로구 한 휴대전화 판매점 직원은 최근 애플이 구형 아이폰에 대해 의도적으로 ‘성능저하 기능’을 도입한 것을 인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이폰을 찾는 신규 가입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아이폰X(텐)의 가격이 처음부터 워낙 비싸게 책정됐는데, 사실상 성능은 아이폰7에서 진화된 게 없다는 게 고객 대다수의 평가였다”며 “요즘은 갤노트8과 아이폰 시리즈 판매 비율이 7대2 정도고, 아이폰X 물량은 남아도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이폰X은 130만원을 웃도는 출고 가격에도 불구하고 공식 판매 전 사전예약 30만대를 기록하며, 놀라운 성과를 예고했다. 하지만 본격 판매에 들어간 지 약 1개월이 흐른 현재,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폰X 판매가 부진하면서 오히려 삼성과 LG의 스마트폰이 반사이익을 누리는 모양새다.

이날 매장에서 만난 박모씨(36)는 “회사 업무용으로 갤노트8을, 개인용으로 아이폰X를 사용하고 있다”며 “두 가지 폰을 동시에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능 비교가 되는데, 갤노트8이 아이폰X보다 반응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실제 스마트폰의 속도를 결정하는 주 요소인 램(RAM)은 아이폰X와 아이폰8에 3GB 용량이 탑재된 것에 비해 갤노트8에는 두 배 수준인 6GB가 탑재됐다.

박모씨는 “기본 스펙도 그렇지만 애플이 의도적으로 성능저하 기능을 도입하는 등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이에 대처하는 방식이 실망스러웠다”며 “최대한 비싼 값에 되팔 수 있을 때 아이폰X를 중고로 팔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애플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배터리 잔량이 적거나 추운 곳에 있을 때 아이폰이 예기치 않게 꺼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속도 지연 업데이트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애플이 아이폰 전력 공급을 원활하게 하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실시했다는 것은 전체 제품 성능을 일부러 떨어뜨려 배터리가 꺼지는 현상을 막겠다는 의미다. 아이폰7은 이달 초, 아이폰6는 지난해 12월 이 조치가 취해졌다.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이동통신사 매장 직원은 “애플이 스마트폰 성능을 일부러 떨어뜨려 신제품 구매를 유도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며 “가격도 비싸고, 배터리 스웰링(배터리가 부풀어 오르는 현상) 문제도 지속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아이폰X을 고객에게 권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판매 수량으로 보면 10대 중에 5가 갤노트8이고, 아이폰 시리즈, V30가 각각 3대, 2대 정도”라며, “갤노트8은 꾸준히 잘 팔리고, V30의 경우 오디오·카메라 성능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고객들이 구매한다”고 전했다.

종로구에 위치한 또 다른 판매점 직원은 “초기에 공급 부족을 우려했던 아이폰X에 대한 반응이 차갑게 식었다”며 “삼성이 갤노트7 발화사태 당시 전량 리콜이라는 조치를 취했던 것과 달리 애플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고객 불만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고의 성능저하와 관련, 미국에서는 이미 4건의 집단소송이 제기됐으며, 이스라엘 등에서도 소송 움직임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국내서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애플에 문제점을 제기하자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한편,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애널리스트들이 아이폰X의 내년 1분기 출하 전망을 잇따라 하향 조정했다고 보도했다. 장빈 중국 국금증권, 제프리 크발 일본 노무라 인스티넷 애널리스트는 “아이폰X가 가격은 비싸졌지만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혁신 요소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