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법안] '블랙홀' 법사위서 잠자는 '민생법안'④ 하도급법, 납품단가 조정은 어떻게?
2017-12-13 11:50
12월 연말 임시국회의 막이 올랐지만 국민을 위한 '민생법안'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법안 통과 마지막 관문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현재 법사위에 계류된 법안은 모두 883건이다. 이 가운데 법사위 고유 법률안 706건, 타 상임위에서 넘어와 법사위 심사를 대기 중인 법률안은 177건이다. 177건의 법안은 이미 타 상임위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여야 합의로 통과된 후 법사위로 넘어왔다. 하지만, 정치적 공방을 빌미로 회의를 열지 않거나 체계·자구 심사를 빌미로 시간을 끌어 '직무유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몇 달 동안 각 상임위는 개미처럼 심사해서 넘겨줬는데 법사위가 베짱이처럼 침대에 누워 심사를 해주지 않을 꼴"이라고 지적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역시 '개점휴업' 상태인 법사위를 두고 자유한국당이 임시국회를 사실상 보이콧하고 있다며 "법사위를 인질로 삼은 대국민 인질극"이라면서 "예산안이 자기 맘대로 되지 않아 막무가내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생법안' 가운데선 연내 반드시 통과시켜야만 하는 필수 법안들이 많다.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개정안'도 법사위에서 대기 중이다. 노무비 변동시 납품단가 조정 신청을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행상 임금인상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않으면 부담은 고스란히 하청기업에게 돌아가는 구조라 만약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은채 내년도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되면 하청업체들의 큰 피해가 우려된다.
◆ 최저임금 인상 시 하청업체에 '납품단가 조정요구권' 준다
지난 8월 22일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소기업의 납품단가 공정화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 등 노무비(임금 외 복리후생비, 퇴직급여충당금 등 모두 포함) 변동 시 납품단가 조정요구권을 주는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개정안(하도급법)'을 대표 발의했다. 납품단가 조정요구권은 원자재가격 인상에만 적용되는 단가 조정신청 권한을 임금인상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으로,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노무비 부담에 대해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노사협상에 준하는 조정 권한을 갖는다.
원사업자로부터 제조 등의 위탁을 받은 수급사업자 중에서 노무비가 납품단가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수급사업자는 하도급 계약을 체결한 이후 임금 인상 등으로 인한 노무비 상승은 수급사업자의 사업 활동에 심각한 부담을 야기한다.
그러나 현행법은 수급사업자가 제조 등의 위탁을 받은 후 목적물 등의 제조 등에 필요한 원재료의 가격이 변동돼 하도급 대금의 조정이 불가피한 경우에만 원사업자에게 하도급 대금의 조정을 신청하거나,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조합원인 수급사업자를 대신하여 원사업자에게 하도급 대금의 조정을 신청한 후 하도급 대금의 조정을 위한 협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최저임금의 변동으로 인한 노무비 변동의 경우는 하도급 대금의 조정 신청 및 협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하도급 계약 체결 이후 노무비 상승에 따른 부담을 수급사업자가 전적으로 떠안게 된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다. 따라서 개정안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노무비가 변동된 경우도 원재료 가격의 변동과 마찬가지로 하도급 대금의 조정 신청 및 협의 대상으로 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달 28일 정무위 법안소위 논의 당시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을 비롯한 일부 한국당 의원들은 "개정안의 취지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이 주요 원인"이라며 "임금 문제는 직접 지원, 간접 지원을 통해 단위 사업장에서 해결하게 돼 있다. 때문에 규모가 큰 중기업, 대기업으로 갈수록 부담이 전이되므로 숙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최저임금 인상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반박했다. 이미 결정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갑론을박하기 보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하자, 정무위 위원들은 개정안의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대를 이뤘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하도급 업체들이 받는 급격한 비용 부담에 대해 원청업체들과 협의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면서 "오히려 한국당 의원이 걱정했던 한계기업들을 살피고 규모가 약한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 역시 "문제는 원하청 간 인건비 책임 전가"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건설업체에서 물량팀까지 나오게 된 배경이 뭐냐. 하청을 만드는 이유는 결국 저임금을 강요하는 방도로 사용하기 위함"이라면서 "최저임금 선을 좀 상향시키는데 누가 어떻게 부담해야 하나. 하청기업이나 대리점 부분은 원청이 상당 부분을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