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거저먹지 말자! 건상유족​(褰裳濡足)

2017-11-09 06:00
원주용 성균관대 초빙교수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사미인(思美人)'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영벽려이위리혜(令薜荔以爲理兮, 벽려 넝쿨 걷어내려 해도)
탄거지이연목(憚擧趾而緣木, 발을 들어 나무에 오르기 꺼려지고)
인부용이위매혜(因芙蓉而爲媒兮, 연꽃으로 중매를 삼고 싶지만)
탄건상이유족(憚褰裳而濡足, 바지를 걷어 발을 적시는 게 꺼려지네)

벽려는 향기 나는 덩굴 이름으로, 나무 위를 타고 간다. 그런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이를 걷어내고 싶지만, 그렇게 하려면 발을 들어 나무를 타고 올라가야 하기에 엄두가 안 난다. 예쁜 연꽃이 웅덩이 가운데 있어 그 연꽃을 꺾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주어서 환심을 사고 싶은데, 그렇게 하려면 바지를 걷고 발을 적셔가며 물에 들어가야 하기에 그렇게 하기는 싫다.

'건상유족(褰裳濡足)'이란 '바지를 걷고 발을 적신다'는 뜻으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할 최소​한의 행위나 대가를 의미한다. 벽려를 걷어낼 생각만 하고 있으면 걷어낼 수 없고, 물가에서 연꽃을 꺾을 궁리만 하고 있으면 미인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얻으려면 잃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손가락 한번 까딱하지 않고 자기 좋은 것만 누리는 이치는 세상에 없다.

당(唐)나라 명승(名僧) 회해(懷海)는 홍주(洪州) 백장산(百丈山)에 머물렀기에 사람들이 백장선사(百丈禪師)라고 불렀다. 백장은 마조선사(馬祖禪師)의 선법을 발전시켜 중국에 선(禪)을 토착화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一日不作 一日不食)"라는 내용의 선원(禪院) 규칙인 '백장청규(百丈淸規)'를 만들었다. 먹으려면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여중생 살인·사체 유기 혐의를 받는 이영학은 13년간 후원금으로 12억원 이상을 받아 딸 진료비로는 1억6000만원만 쓰고 평소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등 호화생활을 하였으며, 할아버지의 수백억원 재산을 놓고 사촌형과 갈등을 빚은 곽모씨는 20억원을 들여 사촌형을 청부살해하기도 했다. 또 백모씨와 처남 서모씨는 가족여행에 초대한다고 속여 미성년자인 딸 친구를 해외로 유인한 뒤 부모에게 1억5000만원의 몸값을 요구하기도 했다.

최소한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거저 먹으려니 잘될 수가 없는 것이다. 먹으려면 일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