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窓] '포스트 차이나' 베트남에 쏠린 눈

2017-11-07 13:40

 

[이수완 에디터]


[글로벌 에디터 이수완] 1975년 4월 30일 오전 11시 30분 사이공이 함락됐다. 월맹(북베트남)군 탱크가 철문을 부수고 월남(남베트남) 대통령궁으로 진입해 월맹기를 내걸었다. 15년간 지속된 미국과의 지루한 전쟁은 끝나고 베트남의 공산화 통일이 이뤄진 순간이다. 다음날인 5월 1일 사이공시는 월맹의 지도자 이름을 딴 호찌민시로 이름이 바뀐다. 

프랑스 식민지배 등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간섭에서 베트남이 독립을 성취하고, 분단국가에서 통일국가로 재탄생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베트남 전체 인구의 10%가량인 4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했다. 전쟁기간 미군의 대공습으로 도로·항만·철도·발전소 등 인프라는 거의 파괴되었고, 고엽제로 인한 장애와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80년대까지 북베트남 정부의 탄압을 피해 바다를 떠돌던 수십만명의 보트피플은 동족상잔의  전쟁이 남긴 또 다른 크고 아픈 상처였다.

종전(終戰) 40여년이 지난 베트남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베트남은 2006년 하노이에 이어 다음 주에는 관광명소인 아름다운 항구도시 다낭에서 25차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주최한다. 베트남 중남부지역 최대의 상업도시로 부유층과 중산층이 밀집한 도시였던 다낭은 보트피플이 가장 많이 발생했던 지역으로 분단의 아픈 기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이번 APEC 회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 등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세계화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자로서 동남아시아의 주도적인 국가로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의 모습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기회이다.

지난 1986년 제6차 공산당 대회에서 베트남은 사회주의 노선을 대폭 수정해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받아들이기 시작 했다. 특히 최근 수년간 각종 투자에 대한 규제가 풀리고 개방 정책이 확대되면서 물밀듯 밀려오는 외국자본의 힘이 고도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베트남의 경제 펀더멘털도 호전되고 있다. 2014년 이후 베트남은 매년 6%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다른 아시아 신흥국들에 비해 고성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인구는 9500만명 정도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이 15세에서 39세 사이로, 젊고 의욕이 넘치는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점은 베트남 경제의 가장 큰 자산이다.  

정부 주도의 친기업 분위기에 높은 교육수준 그리고 풍부한 숙련 노동인력을 갖춘 베트남은 동남아시장에서 제조업 거점을 구축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포스트 차이나'인 것이다. 현재 베트남 수출의 70%는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로부터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작년에는 외국인 방문객이 처음으로 연간 1000만명을 넘어섰다.

지금까지 베트남은 저렴한 임금을 바탕으로 애플, 인텔,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의 '해외 생산기지' 역할을 해왔지만 이젠 곧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최근 경기 호조와 아세안 국가 간 자동차 수입관세 인하로 오토바이의 물결이 넘치던 베트남 주요도시 도로 곳곳은 4륜구동 자동차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올해 들어 주요 국영기업들도 연이어 민영화되고 주식시장에 상장되면서 금융시장도 활기에 차 있다. 베트남 정부의 250개 공기업 민영화 계획에 따라 향후 2년간 기업공개(IPO) 시장규모만 18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베트남은 분명히 한국에게 기회의 땅이다. 한국이 뼈아픈 기억의 베트남전에 미국을 도와 참전했지만 베트남인들의 한국 사랑은 남다르다. 한류 열풍도 식지 않고 있다. 국내 다문화 가정과 주요 산업 현장의 주역도 베트남 사람들이다. 한국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경제대국을 건설한 대한민국. 베트남과의 상호협력, 인적 교류를 더욱 확대해 동반자적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