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리정원' 문근영 "11년 만에 스크린 복귀…자유롭고 싶었다"

2017-10-26 00:00

영화 '유리정원'의 주인공 배우 문근영[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이토록 순수(純粹)한 배우라니. 1999년 영화 ‘길 위에서’로 데뷔, 어느덧 연기 경력 19년차가 된 문근영(30)은 차곡차곡 자신만의 필모그래피(작품 목록)를 완성하고 있다. 어떤 불순물도 없이 오로지 연기만을 위해 살아온 그의 삶은 어딘지 영화 ‘유리정원’(감독 신수원) 속 재연과도 닮아 있다.

25일 개봉한 영화 ‘유리정원’은 무명작가 지훈(김태훈 분)이 숲속 유리정원에서 홀로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는 과학도 재연(문근영 분)을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던 재연은 후배에게 연구 아이템을 도둑맞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빼앗긴다. 깊은 상처를 입은 재연은 어릴 적 자랐던 숲속의 유리정원 안에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우연히 이를 알게 된 무명작가 지훈은 재연의 삶을 훔쳐보며 숲에서 태어나 자란, 초록의 피가 흐르는 여인에 대한 소설을 연재해 순식간에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다. 그러던 중 재연은 미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고 지훈의 소설 속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린다.

너무도 순수해서 아름답고 또한 섬뜩한 영화 ‘유리정원’은 배우 문근영의 존재감은 물론 그 안에 담긴 감정을 투명하게 비춰낸 작품이다. 영화 개봉 전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문근영은 숲에서 태어나, 나무가 된 재연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싶었다”며 깊이 고민하고 고뇌했던 당시를 설명했다.

“재연을 완벽히 이해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이해하고 싶었죠. ‘재연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배우와 캐릭터 간에 거리가 생기다 보니 스스로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재연이를 잘 이해한 거니?’ 계속해서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죠.”

영화 '유리정원'의 주인공 배우 문근영.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세상에서 상처받고 숲으로 숨어버린 재연. 능력 있는 과학도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진 기형적 신체 때문에 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인물이다.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상처를 받고 삶이 흔들리면 광기를 띠게 되는 그는 복잡하고 혼잡한 감정선을 가지고 있다.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요. 하나라도 잘못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삐끗하면 영화 전체가 색이 달라질 수 있어서 분석도 많이 하고 (신수원 감독과) 세세하게 이야기도 많이 나눴어요. 재연의 감정을 받아들일 때 숲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숲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 엄청났고 생각보다 순차적으로 찍어서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죠.”

촬영 내내 “즐거운 마음”이었다고 했다. 재연이 겪는 상황과 감정은 평범하지 않고 괴로운 일투성이였지만, 정작 그를 연기한 문근영은 “마음이 아플지언정 재연을 연기하는 것은 그저 좋기만” 했다.

“그 힘듦이 참 좋았어요. 특히 재연은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이인데 때문에 안에서 만들어지는 힘이 단단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감정을) 풀어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담담하고 내면에 담긴 감정이 응축된 재연을 보면서 도리어 사람들이 아파하길 바랐어요.”

영화 '유리정원'의 주인공 배우 문근영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영화는 ‘순환선’, ‘명왕성’, ‘마돈나’ 등 다수의 작품으로 칸국제영화제·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신수원 감독의 신작이자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다.

“내내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어요. 사실 영화를 찍어 놓은 건 꽤 오래전인데도, 영화를 보니 그때 감정과 형상이 많이 겹치더라고요. 마음이 벅찼어요. 또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잖아요? 그게 정말 (의미가) 컸죠. 뿌듯하기도 하고요. 항상 작품이 아니라 연예인과 팬들의 만남 같은 자리에 갔었는데 진짜 제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가게 되니까 느낌이 달랐어요.”

부산국제영화제의 꽃, 개막작의 주인공이었지만 문근영은 일정 내내 숙소에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예전에도 부산국제영화제에 오긴 했었는데 그땐 어릴 때라서 밤에 나오질 못했거든요. 해운대 포장마차에서 영화인들이 만나고 술도 마시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던데.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 하하하. 아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방에서 혼자 한잔했죠.”

여러 이유에서 영화 ‘유리정원’은 문근영에게 특별한 작품이다. 2006년 영화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이후 약 11년 만의 스크린 주연작이며 올해 초 급성구획증후군으로 세 차례나 수술을 받고 완치해 팬들 곁으로 돌아온 복귀작이기도 한게 그 이유다.

“사실 전 11년이나 (영화를) 쉬었는지 몰랐어요. 정말 오랜만에 찍은 건 사실인데 드라마든 연극이든 늘 연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늘 연기를 하고 있다 보니 (공백기가 길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어요.”

오랜만의 복귀작인 만큼 상업영화로 눈을 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근영은 대중성보다 작품성을 선택, 연기적으로 깊어진 면모를 드러냈다.

“복귀작인데 상업영화가 아니라는 점에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하지만 저는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었어요. 작품이나 연기적인 면에서요. 열정을 찾고 싶었다고 할까요? 타의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열정이요. ‘유리정원’을 좋아하는 건 작품도 좋지만 그 작품을 하는 제 모습도 예뻤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영화 '유리정원'의 주인공 배우 문근영[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어느덧 데뷔 19년 차, 베테랑 배우로 손꼽히는 문근영은 지난 연기 생활을 돌아보며 “허무하다”고 했다.

“숫자로 세지 않으면 그렇게 연기를 오래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실 생각해 본 적도 없고요. 하하하. 18년이나 했고, 오래 연기를 해왔지만 뭘 해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시간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문근영에게 ‘유리정원’의 관전 포인트를 물었다. 국내외 영화인들의 뜨거운 찬사를 얻었던 작품인 만큼, 영화에 깊이 빠져들었던 그가 꼽는 영화의 매력과 묘미가 궁금해서였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푸른 녹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거예요. 거기에 매번 볼 때마다 의미가 깊어지니까 많이 봐주세요. 음, 세 번 정도? 하하하. 곱씹을수록 좋은 영화인 것 같아요. 저는 이 말을 가장 좋아해요. ‘여러분, 유리정원에 놀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