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기획-초갈등사회, 고리를 풀자]❷불협화음 커지는 EEZ 바닷모래 채취

2017-10-23 18:20
업계와 업계‧정부와 업계‧정부와 정부 갈등…복잡하게 꼬인 실타래
여론 눈치보기 급급…이해관계 해결할 묘수 찾기 어려워

올해 초 남해안 EEZ 바닷모래 채취에 반대하는 어민들이 정부세종청사에서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배군득 기자]


배타적경제수역(EEZ)내 바닷모래 채취를 놓고,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잡음이 일던 골재채취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부상한 것이다.

특히 남해안 EEZ 모래 채취가 갈등의 불씨를 댕겼다. 남해안 EEZ 모래 채취는 2008년 부산 신항만 건설용 골재 확보 차원에서 정부가 허가를 내줌으로써 실시됐다. 당시 정부는 국책사업으로 한정해 바닷모래 채취를 허용했다.

그러나 건설업계가 골재 확보에 수월한 바닷모래를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민간 시장에도 풀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자, 정부는 범위를 민간사업까지 확대한다.

지난 10년간 바닷모래 채취로 남해안 생태계는 심각한 변화를 겪게 된다. 어민들은 지난 5년간 남해 모래 채취 구역인 경남 통영 동남쪽 105 해구에서 어획량이 반토막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최인호 의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5286t이던 이 구역 어획량이 지난해 2769t으로 급감했다. 수치만 봐도 어장 생태계가 나빠진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업계 사정도 만만치 않다. 당장 올해 1월 중순부터 남해 모래 채취가 중단되자, 부산‧경남지역 50개 레미콘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전체 골재 가운데 13%가량을 차지하는 바닷모래 공급이 끊기자 단가를 맞추지 못한 건설업계가 반격에 나선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바닷모래 채취는 상당히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꼬인 실타래를 풀 만한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대화 주체도 모호하다”며 “현재 진행 중인 타당성 조사 결과를 토대로 최적의 대안을 마련하는데 업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골재채취법 쥔 국토부 ‘뒷짐’···갈등 키운 정부

EEZ 바닷모래 채취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정부는 관련 피해조사에 착수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바다에서 발생한 사안이고, 어민과 연계돼 해양수산부가 해결해야 한다는 게 국토부의 입장이다.

졸지에 숙제를 떠안은 해수부는 우왕좌왕이다. 당장 골재 채취에 관한 사안부터 벽에 부딪쳤다. 골재채취법 자체를 국토부가 쥐고 있는 탓에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해결할 창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2008년부터 바닷모래 채취와 관련해 채취량만 파악하고 있다. 바닷모래가 공공재로 사용됐는지, 민간용으로 사용됐는지 통계자료조차 없다.

2015년 타당성 조사로 해양 생태에 문제가 없다는 보고서를 내놨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어민단체 관계자는 “어민이 주장하는 것은 EEZ 골재채취의 전면중단”이라며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나서서 의견을 조율하지 않고, 해수부가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확실한 대책을 국토부에서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해수부는 사업권을 쥔 국토부와 별도로 대안 찾기에 나서고 있다. 해수부는 바닷모래 사용이 불가피할 경우, 차기 해역이용 협의시부터는 바닷모래 사용을 국책용으로 한정하고, 채취물량도 일본 등 선진국 사례를 감안해 최소한으로 조정해가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남해 EEZ 골재채취단지에 대한 어업피해 추가조사를 통해 해당 지역이 주요 산란·서식지로 밝혀진다면, 해당지역을 보호수면으로 설정해 바닷모래 채취 금지 등 개발·이용행위를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내용도 담았다.

해수부는 이달 중으로 ‘바닷모래 채취 관련 제도개선 연구 용역’ 결과와 자체적인 수산자원·해저지형 영향조사 등을 바탕으로 국토부와 협의를 통해 연말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늑장대응에 업계는 생존권 놓고 대립각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자 업계는 생존권을 놓고 대립각을 키워가는 모양새를 보인다. 지난 3월에는 어민이 해상시위까지 감행하며 모래채취 중단을 촉구하는 등 목소리를 높였다.

욕지도 해상시위에 참여한 정연송 대책위원장(대형기선저인망수협 조합장)은 “바닷모래 채취는 어민 심장을 도려내는 행위”라며 “수산업과 건설업이 골고루 발전할 수 있는 혜안을 찾고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정부 몫”이라고 강조했다.

어민의 항의 수위가 높아지자, 골재업계도 반격에 나섰다. 전국바다골재협의회는 지난 18일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며 맞불을 놨다.

업계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골재 파동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부가 해결책을 마련하라며 압박수위를 높이는 상황이다.

골재협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연간 모래 소비량은 약 1억㎥로, 이 중 15t 덤프트럭 기준 270만대 분에 달하는 약 2700만㎥이 바닷모래”라며 “바닷모래가 없으면 건축물 품질에 지장을 초래하고, 불량 골재 유통을 촉발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와 업계 모두 납득할 만한 대안 나올까

바닷모래를 둘러싼 갈등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시행 초기부터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이 발생한 갈등이라는 게 전문가의 시각이다. 일본의 경우 바닷모래 채취를 허용하지만 규제가 까다롭다. 이 때문에 일본은 골재시장에서 바닷모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취임 초기 바닷모래 채취 여부에 대해 정확한 자료와 근거를 통해 결정할 뜻을 시사했다. 그러면서도 향후 바닷모래 사용은 국책용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소신도 밝혔다.

김 장관은 “바다가 주인 없는 무주공산은 아니다. 바다는 국민 자산이며 국가 자산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며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모래 공급 경로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더 이상 경제논리를 앞세워 산업정책 명분을 세워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어민과 골재업계가 서로 상생하는 방안으로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은 “바닷모래 채취는 특정업계와 업자의 이득만 보장하는 불균형적 산업정책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경제부총리, 국토부와 해수부 장관을 상대로 허가 연장 부당성을 제기하고 철회를 촉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