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하이브리드角] 한·미 정상, 손 잡고 탱고를
2017-10-19 18:46
현역 병장으로 제대한 한국의 많은 남자들은 ‘군대에서 축구했던’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축구 얘기 말고 미국과 주한미군의 경험을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카투사(KATUSA·미군에 파견된 한국육군)다. 사단법인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카투사 출신은 무려 45만명에 달한다.
필자가 카투사로 복무했을 당시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각지 미군 기지 중 단연 최고 인기지역은 미8군사령부가 있는 서울 용산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군 생활을 한다는 게 다른 무엇보다 큰 장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용산카투사’ 중에서도 경기도 성남의 지하벙커인 ‘탱고’를 경비하는 ‘탱고병’은 상대적으로 기피 부대였다. 한마디로 빡셌기 때문이다.
영어로 된 공식 명칭은 CP(Command Post) TANGO(Theater Air Naval Ground Operations). CP(사령부), Theater(전쟁구역), Air Naval(해·공군), Ground Operations(지상작전) 단어를 연결하면, 탱고는 미군의 ‘전쟁지역 해공군지상작전사령부’라는 뜻이다.
서울 외곽에 그런 어마무시한 군 시설이 있다는 게 처음으로 공식 확인된 건 2005년이었다. 1970년대 지어졌다고 하니 30여년 만에 비밀의 봉인이 해제된 셈이다. 그해 3월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이곳을 전격 방문하면서 외부에 겨우 ‘이름만’ 알려졌다. “라이스 장관이 서울 외곽 탱고를 방문, 한·미 연합 워 게임(War Game·가상 전쟁훈련)을 하고 있던 100여명의 미군, 한국군을 격려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후 이곳은 더 널리 알려져 일부 반전단체들이 반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탱고가 유명세를 치른 것은 ‘전쟁 개시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국 방송사 NBC 리처드 엥겔 특파원 때문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종군기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엥겔은 지난달 6일 ‘서울 외곽 산속’에 있는 이 벙커를 공개했다.
성남시 산속 어딘가 단단한 화강암을 뚫어 만든 탱고에서는 핵전쟁이 일어나도 외부와 단절된 채 2개월 이상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 구석구석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미국 중앙정보부(CIA)와 국방부 정보국(DIA)과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탱고는 더 이상 극비군사시설이 아니다. 페이스북에 Theater Air Naval Ground Operations를 검색어로 입력하면 카투사와 미군들의 생생한 부대생활 동영상도 다수 나온다.
다음달 7~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국을 국빈방문한다.
북한이 ‘전쟁광’이라고 욕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북 운전대’를 제대로 못 잡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탱고를 함께 찾으면 어떨까. 문 대통령이 트럼프의 손을 잡고 한반도 전쟁이 얼마나 세계 평화를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일인지 깨닫게 하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 “북핵에 차분히 대응하자”고 설득하면서. 또 북한을 향해서는 “경거망동하지 마라”는 경고와 함께 적극적인 북·미 대화의 중재자로 나서는 모습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