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한국거래소와 '부금회'
2017-10-17 06:00
이름에 회(會)를 붙인 모임이 참 많다. 동네방네 다 합쳐도 산악회 수에 한참 못 미칠 거다. 이런 모임이 학연이나 지연으로 만들어져 사고를 치기도 한다. 오래전 일을 들추지 않아도 본보기가 많다. 고금회가 이명박 정부 시절에 이름을 날렸다. 대통령과 같은 고려대를 졸업한 금융인 모임이다. 다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닌 서강대 출신 금융인이 서금회로 뭉쳐 잘나갔다.
요즘에는 부금회가 있다. 부산 출신인 금융인끼리 만든 거다. 학연으로 뭉쳐 사익을 챙긴 고금회, 서금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부산지역 경제를 위해 동향인 금융인이 모였으니 대외적인 명분이 그럴듯하다. 생긴 지는 1년 남짓밖에 안 됐다. 장남식 손해보험협회 회장과 정지원 한국증권금융 사장, 김교태 삼정회계법인 대표를 비롯한 쟁쟁한 금융권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부금회는 금융당국에 부산지역 민원을 들어달라고 요구해왔다. 한국거래소 지주전환을 부산에 이로운 식으로 추진하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구체적으로는 거래소 지주를 부산에 두고 싶어 한다. 지금 거래소는 새 이사장을 뽑고 있다. 부금회 일원인 정지원 사장도 이사장 공모에 원서를 냈다. 그는 증권금융에서 임기를 1년이나 남긴 채 박차고 나왔다. 사실상 이사장으로 뽑혔다고 보는 이유다.
정지원 사장은 1년 전 국감에서 꽤나 시달렸다.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을 감사로 뽑았다가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정지원 사장은 "낙하산 인사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런 후에 더 큰 논란이 일었다. 조인근 감사가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려 잠적했다.
그나마 새 거래소 이사장이 올해 국감에 불려갈 일은 없다. 갑자기 인사가 늦어졌다. 애초 유력후보가 '장하성ㆍ변양균 파워게임'에 휘말려 낙마한 탓이라고 한다. 내년 국감에서야 이런 이유에 대한 질문이 나올 거다. 정지원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꽤나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경영전략을 내놓기도 했다. 초대형 투자은행(IB) 시대에 맞춰 역할을 재설정하고,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새 사업도 검토하겠다는 거다. 역시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거래소 임직원은 부산타령에 넌더리를 친다. 최경수 전 거래소 이사장은 지주전환에만 매달려 임기를 보냈다. 정작 기업 자금조달이나 가계 재산증식처럼 본질적인 역할은 뒷전인 채 말이다. 더욱이 지주전환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당시 반대하던 옛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집권당이 됐다. 그렇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부금회는 국회 정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자유한국당 이진복 의원(부산 동래)과 지주전환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거래소 자체는 국가 인프라다. 지주전환이 특정지역에 유리해야 할 이유는 없다. 부산을 국제적인 금융 중심지로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한다. 설득력이 약하다. 서울조차 세계 금융시장에서 그럴 힘이 없다. 애초 거래소가 코스피와 코스닥, 선물시장으로 분산돼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랬다가 10여년 전 합친 이유도 경쟁력 제고다. 대다수 투자자는 거래소를 쪼개거나 합치거나 관심 없다. 정부는 지금도 인사와 예산을 통해 거래소를 장악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말만 하면 먹힌다. 굳이 여러 자회사로 다시 나눠 지주 아래에 두지 않아도 경쟁력을 키우라고 요구할 수 있다.
정지원 사장은 거래소 이사장으로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에서 주요보직을 거쳤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피아ㆍ금피아(기재부ㆍ금융위 출신 낙하산) 논란도 거래소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공공성을 감안할 때 정부와 손발을 맞출 사람을 앉히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부금회라는 꼬리표는 뗐으면 좋겠다. 또 지주전환에만 빠져 임기 3년을 날려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