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국감 좀 다를 줄 알았는데…적폐논쟁(O) 민생논의(X)
2017-10-16 19:00
'사자방' 의혹·盧 전 대통령 유가족 재조사, 국감 최대 이슈
여야, 이념대결 구도 속 '민생' 프레임 전환 실패땐 부메랑
여야, 이념대결 구도 속 '민생' 프레임 전환 실패땐 부메랑
과거와의 전쟁이 10월 정국을 덮쳤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향한 정부여당의 칼끝에 맞서 보수야당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다. 이번 주 국정감사를 흔들 변수는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 의혹과 노 전 대통령 유가족 재조사다.
향후 재판일정 보이콧에 나선 박근혜 전 대통령은 16일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히길 바란다”며 적폐청산 논란에 불을 지폈다. 2000년대부터 시작한 이들의 전쟁은 십수년째 도돌이표다. 정권 초·중반 이념 프레임 가동을 통한 전 정권 솎아내기 등이 여전히 한국 정치의 고질병으로 자리 잡은 결과다.
반면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우 정권 초 이념 프레임보다는 경제 이슈에 올인한다고 전했다. 레이건 정부의 ‘플라자합의’, 클린턴 정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오바마 정부의 ‘오바마 케어’ 등이 대표적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이날 통화에서 “트럼프 정부의 경우에도 자국 내 최대 관심사는 세제개편안”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현행 35%인 법인세를 20%로 대폭 낮추는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다.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가 깨진 민주화 이후에도 전 정권을 향한 춤사위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같은 행동이 지지층 결집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명분 삼아 전 정권을 일거에 치는 정치적 악순환이 반복한다는 얘기다.
실제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드라이브를 건 하나회 숙청 등은 전두환 신군부와의 차별화를 통한 개혁 성향 드러내기였다. 앞선 민주화세력의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택한 3당 합당이 옳았음을 증명하려는 일종의 정치행위였던 셈이다.
민주정부 1∼2기를 열었던 김대중(DJ)·노무현 정부도 사사건건 반대세력의 저항에 부딪혔다. DJ는 취임과 동시에 단행한 금강산 관광 등으로 보수층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둘러싼 대북송금 문제는 지금도 논란거리도 남아 있다.
취임 초 검사와의 대화로 파격행보를 보인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보수층과 충돌하며 사실상 조기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에 빠졌다. 이명박(MB) 정부 1년차 때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파문,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 등도 이념 대결의 대표적 사례다.
◆黨靑-野, 역대 정권 실패 반복…부메랑 리스크 상존
현 상황도 비슷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1 국정과제는 ‘적폐청산’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여야 4당 대표 회동에서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적폐청산 전선은 보수진영의 ‘신(新) 적폐청산’ 프레임을 필두로 DJ·노무현 민주정부 심판론으로 확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유한국당은 ‘신 적폐 청산’과 문재인 정부 연결고리 찾기에 사활을 걸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선 기간 제 처에 대한 통신조회가 8차례 있었고, 이 정부 출범 이후에도 4차례나 통신조회를 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홍 대표는 수행비서 사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적폐청산 프레임을 현 정권으로 확장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정부여당은 이명박근혜를 정조준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정치 개입 의혹과 관련해 MB 수사 여부에 관해 “혐의가 확인되면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제2기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제 정당에 제안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 모두를 엄정한 법적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딜레마는 ‘부메랑 리스크’다. 과거와의 전쟁에서 민생경제 등으로의 이슈 전환에 실패하는 측은 이념 프레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배 본부장은 “이념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면, 민생 외면 비판, 정치 혐오감 증가, 레임덕 현상 가속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 프레임에서 경제 이슈로 선회해야 하지만 회의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