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당일기] 김지영칼럼, 지방자치 현실은 귀향을 힘들게 하고

2017-09-26 20:00

[해우당일기]

 

                            [사진=김지영 초빙논설위원(동양대 초빙교수 · 전 경향신문 편집인)
]


지방자치 현실은 귀향을 힘들게 하고

“이럴려고 내가 고향에 돌아왔나···”
이 동떨어진 시골 무섬에서도 자꾸 지적하고, 비판하고, 고치고 싶어진다. 나이가 들어 고향산천의 품에 안겼다면, 저 무섬 모래밭에 묻을 건 묻고 내성천 물에 흘려 보낼 건 흘려 보낼 줄 알아야 하건만.
기자의 본능이 수시로 꿈틀거린다. 그러는 내가 정말 싫다.
큰집인 해우당 고택을 관리하며 자취를 하는 고생. 평생 이곳에서 뿌리박고 살아온 이들과 아직 정서를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는 어려움. 그런 가운데서도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자연과의 교감, 사람들과 주고 받는 정이 있어 살만한 곳, 고향이다.
그런데 평정을 유지하던 내 마음이 자주 뒤집혀지곤 한다. 대개는 지방 행정 또는 지방 공무원들과 접하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자 본능이 다시 꿈틀거리고, 그러는 내가 싫고, 아직 ‘완숙’하지 않은 나 자신을 탓하며 억누르려고 해보지만,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허다한 일들이 있었지만, 바로 최근의 ‘영주댐 썩은 물 방류 사건’에 얽힌 일이 대변해준다. 무섬마을 5km 상류의 영주댐에 녹조가 가득 차고 썩게 되자, 수자원공사 영주댐 측은 악취가 진동하는 썩은 물을 방류했다. 무섬마을을 감아 흐르는 내성천에 썩은 물이 시커멓게 띠를 이루고 밀려 들어오는 장면은 드론으로 촬영됐고, 방송들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전국적인 뉴스로 떠올랐다.
최근 수십년간 반 정부 시위 같은걸 해본 적 없는 무섬 주민들이지만 이번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궐기했다. 영주시내에 비난 현수막을 내건다, 수자원공사·환경청·영주시에 질의공문을 발송한다, 영주댐에 항의방문을 한다, 내성천 보존회와 공동기자회견을 한다 하면서 한여름 뙤약볕 속에서 동분서주했다. 지역 언론사들은 관련 속보를 잇따라 내보냈으며 일부 방송사는 관련 토론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했다.
이 지역 환경문제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심각했고, 주민들은 걱정과 불안 끝에 행동으로 나섰으며 언론매체는 이같은 상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런데도 이 지역 선출직 공무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민들이 “우리를 대변해 좋은 행정을 펴고, 또 감시해달라”며 표로써 선출해놓은 시의원, 도의원, 시장, 국회의원이 다 마찬가지였다. 얼굴 한번 비치거나 설명을 하거나, 대책 하나 내놓는 ‘선량’들이 없었다.
나는 정말 믿기 어려웠다. 선출직 공무원들의 본업이 생겼는데 이럴 수가 있나? 내가 마을의 친구들에게 “아니, 이럴 수 있나?” 하고 물었더니 그들은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반응이다. “원래 그렇지 뭐”하고 입을 닫아 버린다.
몇몇 주민들이 “이래선 안되겠다”해서 지역 국회의원과 시장을 면담해 따질건 따지고 촉구할건 촉구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나도 참여한 주민 면담팀이 같은 날 그들을 각각 면담했다.
그 결과를 말하자면, 나는 맥이 풀릴 대로 풀렸고 당초 내가 이해하지 못한건 너무나 당연했다는 것이다. 지역 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8월초에 발생해 전국적 뉴스가 된 영주댐 오염수 방류사건을 최근 우리들의 면담신청을 받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또 시장은 “우리가 할 건 다했다”며 배석한 간부들에게 설명을 지시했다. 이에 담당 간부도 “소통을 못한건 죄송하지만 우린 최선을 다했다”고 강변하는 것이었다. 집단 면담 내내 아무 말도 않던 시장은 “손님이 와 있다”며 도중에 자리를 떴다.
환경분야 전공 교수인 주민이 “영주시가 수자원공사나 환경청에 책임을 떠넘기기만 할 게 아니라 영주시민이 피해자인 만큼, 수질측정 등 관리는 영주시가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전문가와 주민이 참여하는 강화한 관리팀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영주시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지만, 주민들은 ‘경험칙상 영주시가 전례에 없는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을 것이며 가부간에 주민들에게 설명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선출직 공무원들이 항상 이렇게 대민접촉을 소홀히 하는건 아니다. 오히려 과도한 포퓰리즘과 대민접촉 때문에 챙겨야 할 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지경이다. 선출직 공무원들은 다음에 또 다시 당선되기 위해서 일을 한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포퓰리즘과 대민접촉에 온통 열성을 쏟지 않는가.
영주는 인구 11만 여명의 작은 시 단위 지역이지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1년 사시사철 온갖 행사가 넘친다. 인삼 축제, 은어 축제, 선비 축제, 산사 음악회, 고택 음악회 등 축제에다 다양한 기념식, 여러 성씨의 문중 행사에 이르기까지···.
국회의원과 시장, 시의원, 도의원은 웬만한 행사에는 다 참석한다. 그렇게 대중 앞에 얼굴 알리고, 앞 다투어 마이크를 잡아 축사와 기념사, 격려사 등을 한다. 그리곤 바쁜 일이 있다면서 휑하니 행사 도중에 자리를 뜬다. 이들을 모시는 직원들, 이들을 맞는 주최측에게는 의전이야말로 중요하고, 선량들은 본업보다는 의전 속에 하루를 보낼 때도 많다.
‘영주댐 썩은 물 방류’같은 일을 외면하는건 이들에게 어쩌면 당연하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해당 주민들을 만나보고, 예산과 정책을 고민하고 연구하는건 재선 가도에서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가 시행된지 20년이 넘었지만 풀뿌리의 정착은 까마득해 보인다. 다른 지역도 대동소이 할까? 나는 영주지역이 유독 심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시민단체 활동도 적고 상주하는 언론사가 없어 감시견의 기능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편안한 귀향 생활이 되기는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