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의 과학과 문화] SF, 과학과 상상의 콜라보

2017-09-26 20:00

[최연구의 과학과 문화]
 

                                               [사진=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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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과학과 상상의 콜라보

뤼크 베송의 신작 SF영화 <발레리안>은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국에서 흥행몰이에는 실패했고 영화평론가들의 평점도 그리 후하지는 않다. 영상미는 뛰어나지만 스토리가 매끄럽지 못하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해서 재미있게 봤다는 평도 적지 않다. 필자는 후자 쪽이다. 프랑스인 특유의 발랄한 상상과 감성, 첨단기술에 힘입은 특수효과와 영상이 만나 SF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만한 대작이다. 28세기 미래, 1000개 행성의 도시 알파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3000개가 넘는 우주 종족 등 스케일이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뤼크 베송이 40년 동안 구상하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하니 아마도 담고 싶은 것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편의 영화라기보다는 SF 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듯했다. 이 영화의 원작은 1967년부터 시작된 만화 시리즈 ‘발레리앙과 로렐린’이다. 우리나라처럼 SF장르가 유난히 취약한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2500억원이 넘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SF 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부러울 따름이다.
SF라는 장르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허구적 상상으로 시작되지만 궁극적으로 과학과 문화발전에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SF가 발전한 나라들을 보면 예외 없이 과학선진국이면서 문화대국이다.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보통 프랑스라는 나라는 문화예술이 발달한 나라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역사적으로 프랑스는 과학기술이 굉장히 앞섰던 나라다. 루이 파스퇴르가 개발한 파스퇴르 공법, 영국과 공동으로 개발한 초음속 여객기 콩코르드, PC통신의 초창기 단말기 미니텔 등 수많은 과학기술의 성과들이 프랑스에서 탄생했다. 프랑스가 과학기술대국이 될 수 있었던 데는 SF도 한몫했다.
SF는 공상과학(Science Fiction)을 뜻한다. 과학적 내용과 공상적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SF라는 새로운 장르가 나타났다. 근대적 SF소설의 이정표를 제시했던 것은 프랑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지구속 여행>, 영국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 같은 작품들이다. 심해나 지구 속을 탐험하고 시간여행을 하는 등 발칙한 상상은 당시로서는 도무지 쓸 데없는 공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허구적 상상이야말로 인간이 미래를 꿈꾸게 하는 힘이다. SF의 상상은 때로는 과학연구를 위한 창의적 아이디어가 되기도 한다.
SF의 선구자로 불리는 쥘 베른이 처음부터 소설가였던 것은 아니다. 원래 법률을 공부했으나 나중에 알렉상드르 뒤마 같은 대문호를 만나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받으면서 문학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일생동안 80여편의 SF소설과 모험소설을 썼다. <80일간의 세계일주>, <15소년 표류기>, <달나라 일주> 등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상상력과 과학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그의 작품에는 당대에는 실현가능성이 없는 것들이 소재로 등장한다. 희귀금속이었던 알루미늄을 달 로켓의 소재로 사용한다는 발상은 획기적이었는데, 산업계는 이 소설에서 힌트를 얻어 알루미늄 실용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또한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에는 잠수함 노틸뤼스와 네모 선장이 나오는데, 1954년 미국이 개발한 최초의 원자력잠수함은 ‘SSN-571 노틸러스(Nautilus)호’라 이름 붙여졌다. 쥘 베른이 잠수함·해저 여행·달나라 여행 등을 상상하며 모험소설을 썼던 것은 1800년대 후반이었지만, 그의 공상 중 대부분은 다음 세기에 현실이 되었다. 이쯤 되면 SF가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일본도 SF가 강한 나라다. 1964년에 제작된 데스카 오사무의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은 오늘날 일본이 아시모를 만든 로봇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한 힘이다. <공각기동대>, <20세기 소년> 등 SF만화,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보여준 엄청난 상상력은 일본의 저력이라고 할 만하다.
상상력만 있다고 SF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상력이 과학과 만나야 SF가 된다. SF는 상상으로 빚어낸 허구의 이야기지만 당대 과학발전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당장은 실현가능성이 없지만 과학이 고도로 발전하면 이루어질 법한 이야기여야 한다. 과학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SF가 아니라 판타지다. 결국 중요한 것은 SF의 허구적 상상이 과학기술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는 점이다. 그 상상은 연구개발의 모티브가 되고, 과학자들은 SF를 보며 미래를 꿈꾼다. 그러면서 과학이 발전하고 새로운 상상이 다시 시작된다. 과학과 상상의 콜라보로 만들어지는 창의적인 문화가 바로 SF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