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58] 인간 칭기스칸의 매력은? ③

2017-10-02 10:23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골고루 나누는 전리품, 전투력 높여
푸른 군대에게 승리를 엮어내도록 만든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전투 과정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이 전리품의 공정한 분배다. 이는 재화의 공정한 분배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칭기스칸의 생활태도가 만들어낸 성과다. 타타르족과 싸운 달란 네무르게스 전투에서 제시한 이 실험적인 조치로 푸른 군대는 어려운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전리품의 획득은 유목민들이 전쟁에 나서는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다. 그런 만큼 싸움에 나서는 병사들의 머리에는 전투가 끝난 뒤 챙길 전리품에 대한 생각이 항상 가득 차 있다. 그러다 보니 전투 과정에서도 전리품 때문에 지체하게 되고 정신이 딴 곳에 팔려 목숨까지 잃는 일이 허다했다.

[사진 = 유목민 식사준비]

전쟁이 끝난 뒤 획득한 전리품을 공정하게 배분한다면 병사들은 오직 이겨야겠다는 생각 하나만 가지고 전투에 열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 불문율 된 재화의 공정한 분배
전리품의 공정한 분배를 약속한 타타르와의 전투이후 재화의 공정한 분배는 푸른 군대의 불문율이 됐다. 병사에서부터 장수 심지어 칭기스칸에 이르기까지 별 차이가 없는 공정한 분배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그 바탕에 깔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높아 이른바 신용의 바탕이 마련된 조직은 그만큼 배가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사진 = 나착도르지교수(원로역사학자)]

이와 관련해 몽골의 원로 역사학자 나착도르지교수는 “칭기스칸은 전쟁에서 빼앗은 재물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특별법까지 만들었다.
누군가 마음대로 재물을 사용하면 그 사람이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엄격하게 처벌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 분배 원칙 위반 땐 아들도 용서 못해
실제로 재물을 함부로 나눠 가진 세 아들도 그냥 두지 않으려 했던 경우가 몽골비사 260장에 기록돼 있다.
 

[사진 = 이렌호트 시장(몽·중 국경지대)]

"주치와 차가다이, 오고타이 등 세 아들은 1219년 아무다리야 강 너머에 있는 우루겐치성을 항복시킨 뒤 전리품을 나눠 가졌다. 이에 칭기스칸은 세 아들을 꾸짖은 뒤 사흘간 알현시키지 않고 이들을 처벌하려 했다. 그러자 보르추와 무칼리 등이 이번 일을 장래의 교훈으로 삼게 하고 세 아들을 용서해 주라고 간청했다. 이에 칭기스칸은 화를 참고 세 아들을 불러 서 있던 땅으로 꺼져 들도록, 이마의 땀도 닦을 수 없도록 큰 소리로 꾸짖었다."

칭기스칸이 세 아들을 '땅으로 꺼져 들도록'엄하게 꾸짖은 것은 자기 몫의 재물을 중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정한 분배라는 믿음의 원칙을 저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충성․은혜 보답도 공정한 분배 원칙

[사진 = 칭기스칸 모자이크상(몽골 군사박물관)]

칭기스칸은 나눌 때는 공정하게 나누면서 대칸의 자격으로서 부하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넓은 도량과 넉넉한 씀씀이로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자신에게 충성하고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는 반드시 은전을 베풀었다. 그가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동안 그에게 힘이 돼 줬던 모든 사람은 대몽골제국 탄생이후 칭기스칸으로부터 자신들의 명예와 재산을 최대한 보상받는 방향으로 은총을 입었다.

칭기스칸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공을 일일이 열거하며 은전을 베풀었다. 또한 전사한 너흐르들의 부인과 자식들 가족들에게도 물적 심적 보상을 해주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카라칼지트 전투에서 숨진 영웅 코일다르 세첸의 가족에게 자자손손 잘 살 수 있도록 조치한 것 등이 그 것이다. 자신이 부하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으니 부하들에게 베풀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어쩌면 공정한 분배라는 의식을 그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 아닐까?

▶ 뿌리 깊은 복수 의식
복수는 사람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특히 유목민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 가운데 하나다. 당대에 복수하지 못하면 그 다음 대에 가서라도 마무리지어야할 의무로 남겨진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에게 신부를 빼앗겼던 메르키드족이 오랜 세월을 기다려 테무진의 부인 부르테를 납치해간 사례는 유목민들의 일반적인 복수의식을 짐작케 해준다.
 

[사진 = 몽골 차강사르(설날)]

자기 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처럼 관대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칭기스칸이지만 적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원한이 얽힌 적에 대해서는 야수와 같이 가차 없고 잔인했다. ‘빚지고는 살수 없다’는 의식이 칭기스칸에게 뿌리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죽음으로 이어진 복수 집념
선조 암바가이칸을 목 박아 죽게 만들고 자기의 아버지 예수게이를 독살한 타타르족에 대해서는 수레에 키를 대보게 한 뒤 거의 모두 처참하게 살해했다. 자신을 포로로 잡아갔던 타이시우드족은 재조차 남기지 않고 말살했다.
 

[사진 = 폐허가 된 오트라르성]

또한 부르테를 납치해 갔던 메르키드족을 처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보낸 사신을 살해하고 호레즘 전쟁을 유도한 오트라르 성의 이날축은 귀와 눈에 끓는 은을 부어 살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스스로 전쟁을 불러들인 뒤 도주 길에 나선 호레즘의 군주 무하마드는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처벌하라는 칭기스칸의 명령을 받은 제베와 수베타이의 끈질긴 추적을 받다가 결국 숨졌다.
 

[사진 = 폐허가 된 서하왕릉]

복수에 대한 집념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이끌어 갔다. 노구를 이끌고 나선 2차 서하 원정도 호레즘 원정 때 도움을 주지 않는 대신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탕구드족에 대한 응징으로 단행된 것이었다. 그는 이 원정으로 서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도록 철저히 말살시켰지만 결국 자신도 원정 중에 숨지고 말았다.

▶ 적장에 대한 배신도 용서하지 않아
인간 칭기스칸에게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배신자에 대한 혐오감이다.
자신에 대한 배신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적이라도 자신의 군주를 배신할 경우 용서하지 않았다. 자모카를 잡아다 바친 자모카의 부하들은 그 즉시 처형됐다. 대신 비록 적일지라도 자신의 군주나 군을 위해서 끝까지 용감하게 싸우는 사람에 대해서는 충성심이나 용맹성을 높이 평가하며 대우했다.

활로서 칭기스칸이 탄 말을 쓰러뜨리며 용감하게 싸운 제베는 칭기스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가장 측근의 용맹한 전사로 거듭났다. 케레이트족을 위해 최후까지 분전한 바아투르도 칭찬과 함께 오히려 중요한 자리에 기용됐다.

▶ 개와 어머니가 가장 두려웠던 칭기스칸

[사진 = 몽골 어린이와 개]

칭기스칸은 지극히 인간적인 면도 지니고 있었다. 개를 무서워하는 심약한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호엘룬을 두려워해 어머니 앞에서는 언제나 여러 자식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인간 칭기스칸을 총체적으로 보면 그 자신이 가진 친화력과 냉철한 판단력, 권력을 향한 강한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열린 마음 등이 어우러져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던 원초적인 힘이 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