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영토 분쟁①] 끊임없는 영유권 다툼…‘국경의 정치학’
2017-09-09 06:00
인도·소련·베트남 등 20여개국…동·남중국해 영유권 놓고 日·아세안과 충돌
# 올해 2월 11일 중국에서 위안샤오제(元宵節)라고 부르는 정월대보름에 관영방송 CCTV 등 언론에서 한 인물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왕치(王琪·78)씨는 인도 접경 지역에서 근무하다 길을 잃어 인도로 넘어간 뒤, 중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54년 만에 모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중국과 인도는 국경 분쟁 중이었다. 왕씨는 무단 영토 침입죄로 7년간 수감된 뒤 풀려났지만, 인도 당국은 그를 중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의 모친은 자식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2006년 숨을 거뒀다.
왕씨의 파란만장한 사연은 양국의 해묵은 감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아이러니하게도 올해는 양국 국교 수립 67주년이다. 최근 두 달여 만에 일단락된 두 나라 간의 ‘힘 겨루기’로 중국의 영토 및 국경 분쟁 역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 캐나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국토가 네 번째로 넓은 나라다. 국경선은 약 2만2117㎞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넓은 국경선은 각종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다. 육상에서 국경을 맞댄 나라만 14개국으로 세계 1위다.
중국은 현재 세계 20여개 국가와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인도를 비롯해 미얀마·라오스·베트남·네팔·부탄·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일본·필리핀 등 한 번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황량한 사막에서부터 고원지대, 원양의 섬까지 분쟁지역도 다양하다.
영토 분쟁에 대해 중국 정부는 적극적이고 강경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해당 지역이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 뿐만 아니라 지하 광물자원과 수산자원 확보 등 다양한 정치·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전략으로 분석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취임 이후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영토 분쟁에 나서고 있다.
먼저 해양 영토 분쟁 중의 대표적인 사례는 동중국해에서의 일본과의 ‘싸움’이다. 중국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釣魚島)를 둘러싼 분쟁을 몇 년째 이어오고 있다.
지난 5일 일본 외무성은 센카쿠열도 주변 해역 상공에서 확인된 소형 무인기(드론) 추정 물체가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중국 관영 TV에 방송됐다며 중국 측에 항의했다.
일본 정부는 올 5월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는 센카쿠 열도 주변 해역에 중국 해경국 선박이 진입한 뒤 드론 추정 비행물체가 확인됐다며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 등 4대를 긴급 발진시킨 바 있다.
남중국해에서는 베트남과 난사군도(영어명 스프래틀리 제도·베트남명 쯔엉사군도), 필리핀과는 황옌다오(필리핀명 파나타그로) 영유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과는 서해에서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이어도 관할권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중국의 행보에 대해서 주변국들 역시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대처하고 있다.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들은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및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을 통해서 중국과의 영토 갈등에 공동 대응한다는 원칙 하에 회원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 측에 “최대한의 자제와 평화적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처음부터 중국이 국경 분쟁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고대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모두 ‘천하에 왕의 영토가 아닌 곳이 없다’는 전통적 이념에 따라 중국과 주변 국가에 대한 현대적 의미의 국경 개념이 없었다.
서양의 국가 주권 개념과 침략자들의 침입 등으로 인해 주권과 국경 문제는 나날이 부각됐고, 청(清) 왕조부터 국경 사수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청나라는 서양의 침략자들로 인해 각종 불평등한 조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영토를 할양했다.
1960년대 중국은 주변국인 미얀마, 네팔, 몽골,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북한 등과 국경 조약과 협의를 체결하며 쌍방 간의 국경을 명확히 구분했다. 중국이 성립된 이후 첫 국경 획정의 시기가 온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소련, 베트남, 인도 등 일부 국가와의 분쟁은 해결되지 않았다.
소련의 해체 이후 중국은 국경 획정의 두 번째 시기를 맞게 된다. 북방 지역에 새로 독립한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국가와 국경에 대한 협의를 체결 획정했다. 중·러 국경 담판 역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2008년 10월, 중국과 러시아는 볼쇼이우수리스키 섬에 국경을 의미하는 비석을 세우는 의식을 거행했다. 이로써 중·러는 300여년간 지속돼 오던 영토분쟁의 종지부를 찍게 됐다.
소련이 붕괴한 뒤 독립한 각국과의 국경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했다. 남쪽에서는 베트남과 국경 담판을 논의했다. 10여년 간의 논의를 거친 끝에 2008년의 마지막 날 중국과 베트남은 지상에서의 양국 국경과 북부 해안의 국경을 구분했다.
왕치(王琪·78)씨는 인도 접경 지역에서 근무하다 길을 잃어 인도로 넘어간 뒤, 중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54년 만에 모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중국과 인도는 국경 분쟁 중이었다. 왕씨는 무단 영토 침입죄로 7년간 수감된 뒤 풀려났지만, 인도 당국은 그를 중국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의 모친은 자식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2006년 숨을 거뒀다.
중국은 러시아, 캐나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국토가 네 번째로 넓은 나라다. 국경선은 약 2만2117㎞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넓은 국경선은 각종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다. 육상에서 국경을 맞댄 나라만 14개국으로 세계 1위다.
중국은 현재 세계 20여개 국가와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인도를 비롯해 미얀마·라오스·베트남·네팔·부탄·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일본·필리핀 등 한 번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황량한 사막에서부터 고원지대, 원양의 섬까지 분쟁지역도 다양하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취임 이후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영토 분쟁에 나서고 있다.
먼저 해양 영토 분쟁 중의 대표적인 사례는 동중국해에서의 일본과의 ‘싸움’이다. 중국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釣魚島)를 둘러싼 분쟁을 몇 년째 이어오고 있다.
지난 5일 일본 외무성은 센카쿠열도 주변 해역 상공에서 확인된 소형 무인기(드론) 추정 물체가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중국 관영 TV에 방송됐다며 중국 측에 항의했다.
일본 정부는 올 5월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는 센카쿠 열도 주변 해역에 중국 해경국 선박이 진입한 뒤 드론 추정 비행물체가 확인됐다며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 등 4대를 긴급 발진시킨 바 있다.
남중국해에서는 베트남과 난사군도(영어명 스프래틀리 제도·베트남명 쯔엉사군도), 필리핀과는 황옌다오(필리핀명 파나타그로) 영유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과는 서해에서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이어도 관할권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중국의 행보에 대해서 주변국들 역시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대처하고 있다.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들은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및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을 통해서 중국과의 영토 갈등에 공동 대응한다는 원칙 하에 회원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 측에 “최대한의 자제와 평화적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처음부터 중국이 국경 분쟁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고대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모두 ‘천하에 왕의 영토가 아닌 곳이 없다’는 전통적 이념에 따라 중국과 주변 국가에 대한 현대적 의미의 국경 개념이 없었다.
서양의 국가 주권 개념과 침략자들의 침입 등으로 인해 주권과 국경 문제는 나날이 부각됐고, 청(清) 왕조부터 국경 사수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청나라는 서양의 침략자들로 인해 각종 불평등한 조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영토를 할양했다.
1960년대 중국은 주변국인 미얀마, 네팔, 몽골,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북한 등과 국경 조약과 협의를 체결하며 쌍방 간의 국경을 명확히 구분했다. 중국이 성립된 이후 첫 국경 획정의 시기가 온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소련, 베트남, 인도 등 일부 국가와의 분쟁은 해결되지 않았다.
소련의 해체 이후 중국은 국경 획정의 두 번째 시기를 맞게 된다. 북방 지역에 새로 독립한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국가와 국경에 대한 협의를 체결 획정했다. 중·러 국경 담판 역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2008년 10월, 중국과 러시아는 볼쇼이우수리스키 섬에 국경을 의미하는 비석을 세우는 의식을 거행했다. 이로써 중·러는 300여년간 지속돼 오던 영토분쟁의 종지부를 찍게 됐다.
소련이 붕괴한 뒤 독립한 각국과의 국경에 대해서도 논의를 시작했다. 남쪽에서는 베트남과 국경 담판을 논의했다. 10여년 간의 논의를 거친 끝에 2008년의 마지막 날 중국과 베트남은 지상에서의 양국 국경과 북부 해안의 국경을 구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