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도 못 떼고… 표류하는 '한국판 테슬라'

2017-09-04 18:42

'한국판 테슬라'가 첫걸음조차 못 떼고 있다. 정권 교체로 지속성에 의문이 생겼고 풋백옵션 때문에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도 부담이 크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익 미실현 기업 상장 요건'으로 상장에 성공한 회사는 아직 한 곳도 없다. 이 요건은 테슬라 요건으로도 불린다. 적자 기업도 성장성만 확실하다면 상장할 수 있도록 특례를 적용해준다.

거래소는 이 제도를 연초 신설했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2016년 9월 "미래 성장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적자 기업이라도 상장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며 테슬라 요건 도입을 포함한 상장·공모제도 전면 개편을 추진한 데 따른 결과다.

하지만 반응이 미지근하다. 카페24와 티켓몬스터는 연초 국내 증권사와 테슬라 요건으로 상장하기 위한 주관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카페24는 여전히 일정을 못 잡고 있다. 티켓몬스터도 대규모 투자자금 유치에 성공해 상장 계획 자체를 접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제도를 추진할 힘이 약해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시장 신뢰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과도한 요건 완화는 적극적으로 막겠다"고 말했다. 테슬라 요건에 대해 전임 금융위원장과는 다른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읽힐 수 있다.

환매청구권(풋백 옵션)에 따른 증권사 부담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테슬라 요건으로 상장된 기업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풋백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 풋백 옵션은 테슬라 요건으로 상장한 기업 주가가 3개월 안에 공모가보다 10% 넘게 떨어질 경우 상장 주관사가 10% 내려간 가격에 주식을 매수해주는 투자자 보호 장치다. 중소형 증권사가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점이 지적돼왔다.

이런 이유로 상장주관 계약도 대형 증권사 위주로 맺어졌다. 카페24는 미래에셋대우·유안타증권과 대표주관계약을, 한화투자증권과는 공동주관계약을 맺었다. 테슬라 요건 상장을 포기한 티켓몬스터는 당초 삼성증권과 대표주관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테슬라 요건을 활용한 상장 시도가 아예 끊긴 건 아니다. 신한금융투자는 사물인터넷(IoT) 시각화 플랫폼업체인 엔쓰리엔과 상장주관계약을 맺고 코스닥 시장 데뷔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미래에셋대우는 카페24를 코스닥에 상장시키기 위해 이달 말 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청구를 할 예정이다. 빠르면 연내, 늦으면 내년 초 상장해 1호 타이틀을 차지한다는 목표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7월 말부터 거래소와 사전협의를 시작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날짜가 없어 유동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