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인사이트] 막을 수 없는 문화 콘텐츠의 힘
2017-09-04 09:37
신재우 채널W 대표이사
일본관광국(JNTO)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약 509만명으로 637만명인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2017년에는 7월 누적 기준 약 404만명이 일본을 방문해 전년 대비 42.8% 증가세를 보였다.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정부가 미워 죽겠고, 한국인 관광객에게 와사비 폭탄을 먹이는 나쁜 스시집이 있는 곳임에도 단순히 가깝다는 이유로 자비를 들여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은 광복 이후 1998년까지 일본의 대중문화 상품을 공식적으로 수입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금지해왔다. 하지만 이런 규제가 철폐되어 일본 드라마, 음악 등의 판매가 허가된 2004년 이전에도 보부상 등을 통해 소위 불법 CD와 만화, 애니메이션이 유통되며 일본 문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키곤 했다.
일본문화의 공식 개방 이후 10여년이 지난 이제는 우리 요소요소에 ‘일본식’이 들어와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노래방의 원조인 가라오케부터 스시·라멘·이자카야는 이제는 굳이 일본이 원조라며 배척하지도 않게 되었고, 삼시세끼 중에 일식을 쉽게 선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방송도 그렇다. 심지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본 폄하용 아이템 중 하나였던 ‘오타쿠’ 문화를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졌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재포장하여 ‘덕후’를 테마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도 했을 정도다.
막혀 있던 문화의 장벽이 일단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앞서 언급한 다양한 문물이 들어오는 초기 과정에서 다양한 선입견으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더욱이 정치적·역사적 앙금이 해소되지 않은 국가의 문화라면 저항은 더 강력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장애를 뛰어넘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 콘텐츠라 할 수 있겠다. 복잡한 것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를 통해 더 많은 콘텐츠를 갈구하게 만들고 이들이 출연하는 드라마나 영화, 노래의 가사에 심취하며 점차 타 문화에 대해 너그러워지고, 종국에는 직접 가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실, 그러한 순수한 욕구마저 드러내지 못했던 시절에도 몇몇 선구자적 예능인들은 일본에 유학하며 배운 것들을 우리 방송에 적용했고, 세간에 천재라 불리는 PD는 업계에서는 복사기라는 비난을 받지만 지금도 일본 방송을 차용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국내 시청자들이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우리만의 포맷으로 ‘한류’ 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계로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SNS가 발달하면서 언론을 통해 약간의 불씨만 제공해도 여론이 쉽게 증폭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때때로 한·일 간 정치적 발언이 삽시간에 감정적 여론으로 발전하지만, 금세 전혀 다른 이슈로 양몰이를 당하곤 한다.
여론에 쉽게 뜨거워질 법한 순간, 한번 숨을 거르며 긴 세월 우리가 쌓아온 문화 교류의 흔적을 떠올렸으면 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것,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내 순수한 갈망을 새삼 의식하고, 선동되지 않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세련해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