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브이아이피' 장동건, 가장 보통의 얼굴
2017-08-29 17:47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제작 ㈜영화사 금월·공동 제작 페퍼민트앤컴퍼니·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는 CIA와 국정원 요원의 기획으로 북에서 건너온 VIP가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의 치열한 분투를 그려낸다.
최근 아주경제와 만나 인터뷰를 가진 배우 장동건 역시 극 중 재혁을 아주 평범한 인물로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다음은 장동건과의 일문일답이다
- 국정원 분을 한 번 뵌 적이 있다. 평범한 직장인처럼 보였다. 재혁의 경우는 필드에서 뛰는 요원이었다가 승진에서 사무직으로 넘어오게 된 설정이니까.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무직 부분이어서 조직에 속한 공무원 같은 느낌을 내길 바랐다. 기존 국정원 요원들을 다룬 작품들은 첩보원 느낌이 나는데 이번 영화에는 현실적인 국정원 요원을 보여주려고 했다.
직장인의 생활을 이해하기 힘들지 않나?
- 잘 모르시겠지만, 저도 MBC 공채 출신이고 2년간 비정규직으로 지냈다. 시간에 맞춰서 출퇴근도 하고 출석부에 도장을 찍으면서 나름 직장 생활을 했다. 하하하. 야외 수당도 받고. 직장인의 애환은 사회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고 나와도 아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 박훈정 감독님의 전작 ‘신세계’는 조직 폭력배 내에서의 일을 다루고 있지 않나. ‘브이아이피’는 그들을 더욱 확장한 느낌이다. 정치 외교적으로. 국정원의 무능함보다는 현재 국제 정세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런 여러 가지 상황들이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극 중 재혁은 네 명의 인물 중 가장 큰 심리적·태도의 변화를 맞는데
- 시나리오를 읽고 가장 좋아했던 것도 그 부분이다. 유일하게 심경 변화를 겪는 인물이지 않나. 조금씩 변화하는데 순간순간 벌어지는 걸 연기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감독님과 대화도 많이 나눴고. 결론적으로는 드러내지 말자고 했다. 마지막 반전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최대한 덜어내려고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 톤이 더 맞겠다고 생각했다.
재혁의 심경 변화는 어땠나?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그대로 유지된 편인지?
- 재혁은 도덕·정의감을 누르고 사는 현실적 사람이다. 승진을 원하는 그냥 평범한 인물이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재혁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결혼은 했을까? 아이는 있을까? 그런 전사적 작업. 영화에 소개되진 않았지만 재혁이 가정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살아남으려고 하고 때로는 옳고 그름을 외면하기도 한다고.
재혁을 두고 전작 ‘우는 남자’의 곤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 저도 그 부분이 걱정됐다. 그래서 차별점을 주려고 노력했다. 특히 영화 오프닝과 엔딩을 재혁이 맞기 때문에 현장 요원이라는 점을 충분히 살리려고 했다. 외적으로는 피부를 거칠게 한다거나 항상 피곤한 느낌을 주는 등.
엔딩에 대한 재혁의 심경은 무엇이었을까?
- 심경보다는 태도의 변화를 드러내고 싶었다. 재혁이 마음을 고쳐먹고 응징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보니 (김광일을) 처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지. 깡통 계좌에 더는 광일이 필요 없겠다고 생각이 들어 처단하는데 그 순간조차 (박재혁은) 잃을 게 없는 거다. 마지막 에필로그 같은 경우도 통쾌한 감정보다는 업무를 끝내고 퇴근하는 마음으로 연기했었다.
남자 배우들과 협업은 어땠나
- 정말 좋았다. 중요한 장면은 김명민 씨와 많이 주고받았는데 예상보다 더 유쾌하고 활달하시더라. 어색한 분위기를 잘 못 견디는 편인 것 같다. 덕분에 현장이 즐거웠고 그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이종석과는 어땠나? 연기적 갈증을 느끼고 외모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 공감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 처음 이 작품을 종석이가 하겠다고 했을 때 의아했다. 심지어 본인이 찾아와서 하겠다고 했다는데. 심적으로는 (이종석의 행동이) 이해가 가더라. 연기에 목말라 있구나, 변화하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역시 과거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현장에서 다 내려놓고 약점을 보여주면서 도와달라고 하니까 선배로서 끌어주고 싶고 응원하는 마음도 생기더라.
장동건은 그 한계를 극복한 건가?
- 이전보다는. 예를 들면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보면서 ‘지금은 더 재밌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쭈뼛거리고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하나 선을 그었던 것 같다. ‘외모 때문에 한계가 있지 않으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바꿔 말하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역할에 한계가 있다. 이건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재능의 문제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 먼저 영화 ‘7년의 밤’에서 무거운 캐릭터를 연기했었다. 거기에서 나오고 싶어서 밝은 작품을 찾던 중 중국에서 드라마를 찍게 된 거다. 이후에는 남자다운 걸 찍고 싶어서 ‘브이아이피’를 찾게 됐고. 자기 심경과 맞닿는 작품을 보았을 때 끌리는 것 같다. 어떤 패턴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현재는 가족들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제가 출연한 영화들은 아이들이 클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하니까. 지금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따로 있나?
- 아이들은 ‘번개맨’ 같은 슈퍼 히어로를 좋아하는데. 하하하. 현실상 그런 걸 하기가 쉽지 않다. 제 작품 중 ‘연풍연가’라는 작품을 유일하게 보여줬는데 애가 부끄러워서 못 보더라. 오글거린다고. 하하하.
배우이자 남편, 또 아빠이기도 하다. 세 가지 중 가장 무겁고 힘든 건 무엇인가?
-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굳이 꼽자면 아빠일까? 조심스럽다. 세 가지 중 가장 잘 하고 싶은 건 아빠다.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너스레도 늘고
- 새삼스럽게 내가 변했다기보다는 예전에는 진지한 작품에 내가 웃고 떠드는 게 결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많은 배우가 있으니까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또 농담도 받아주시는 분위기라 자연스럽게 더 드러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장동건 하면 선량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이런 것이 스스로를 가두고 압박하지는 않나?
- 물론 그런 부분도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가리고 지우려고 저와 반대되는 캐릭터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린다고 가려지나?’ 싶은 마음이다. 하하하. 농담처럼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일부러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려고 하지 않는다. 나쁜 사람이 착한 척하고, 착한 사람이 나쁜 척하는 걸 20여 년간 보여줄 수 있을까? 지금 보이는 게 진짜 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