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재판 때마다 '법원은 괴로워'

2017-08-21 18:36
'대통령께 경례'부터 '내가 대통령 딸이다'까지 천태만상
5월 23일 첫 재판 이후 16명 퇴정 조치…2명 감치재판 받아
재판 끝나면 박 대통령 '배웅' 위해 앞다퉈 나가기도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에 청사 내 질서유지 협조 안내문이 붙어 있다.[사진=정상훈 기자]


"방청객 여러분께 당부말씀 드립니다. 방청객 여러분께선 재판장의 지시통제에 따라 정숙을 유지해야 합니다. 소란행위를 할 경우 퇴정당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법정 입정과 방청이 영구 금지될 수 있으며, 또는 구치소에 구금되는 감치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뇌물 혐의 재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재판 시작 전 법원 경위가 방청객들에게 재판 중 정숙해줄 것을 안내한다. 재판을 맡은 형사합의 22부 김세윤 부장판사도 재판 시작 때마다 "이번 사건은 국민적 관심이 많은 중요한 사건"이라며 "방청객들께선 정숙을 유지해 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협조해주시길 바란다"고 거듭 요청한다.

그럼에도 417호 대법정에서는 지난 5월 23일 첫 재판 이후 크고 작은 소란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재판 직후 검사를 향해 "너희는 총살감이다. 반드시 처벌 받을 것"이라고 말한 50대 남성이 감치 5일 처분을 받았다.

이날 이 남성은 휴정 때마다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방청객들을 모아놓고 "법조와 검찰, 언론은 전부 탄핵될 것"이라면서 "방청석 앞자리에는 전부 젊은이들만 앉아 있다. 재판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이날 재판에는 11살과 9살 난 어린 남매가 방청석에 자리했지만, 휴정시간 내내 남성의 거친 언행은 계속됐다.

박 전 대통령이 입정하거나 퇴정할 때 예의를 갖추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부 지지자들의 모습은 이제 예삿일이다. 이들은 행동을 제지하는 법원 경위에게 "판사가 들어올 때는 일어나게 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들어올 때는 왜 못 일어나게 하냐"며 따지곤 한다.

지난 6월 20일에는 한 방청객이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대통령님께 경례"를 외쳐 퇴정 당했다. 이 방청객은 "대통령님께 인사하는 게 무슨 지장이 있냐"면서 "대한민국 만세, 애국 국민 만세"를 외쳤다. 지난달 21일에는 한 남성이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들어서자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이 남성은 법정 경위에 의해 끌려 나가면서도 "왜 퇴정시키나, 울지도 못하느냐"고 항의했다.

자신이 박 전 대통령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방청객도 나왔다. 지난달 3일 한 여성은 법정에서 "제가 박근혜 대통령의 딸"이라고 외쳤다. 이 여성은 퇴정 당하면서도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엄마"라고 소리쳤고, 박 전 대통령마저 이 모습을 보고는 실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일에는 한 방청객이 재판 도중 손을 들고 "질문 있다"고 소리쳐 과태료 50만원을 처분 받았다.

법원조직법 제61조는 '법원은 직권으로 법정 내외에서 폭언, 소란 등의 행위로 법원의 심리를 방해하거나 재판의 위신을 현저하게 훼손한 사람에 대해 20일 이내의 감치에 처하거나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퇴정 명령을 받은 사람은 총 16명. 2명은 감치재판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소란이 계속되자 재판부는 최근 417호 대법정에 소란이나 재판 방해 등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채증용 카메라'를 설치했다.

또한 법원 청사 곳곳에는 청사 내 질서유지 협조 안내문이 내걸렸고, '청사에서 소란행위 시 퇴거‧형사처벌 가능'이라는 경고 문구도 붙었다.

법원 내 질서를 유지하는 경위들도 비상이 걸렸다. 한 법원 경위는 "최근 들어 소란에 대비하기 위해 안내문을 붙이는 등 평소보다 많은 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질서 유지가 안 되면 바로잡는 게 우리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면서 "질서는 잡아가는 것이고, 소란스러운 일이 없으면 좋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판이 끝나면 일부 소란을 일으키는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누구보다 먼저 법정을 나가기 바쁘다. 호송차를 타고 서울구치소로 돌아가는 박 전 대통령을 배웅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재판이 끝났을 때가 오히려 소란이 덜 일어난다는 게 법원 경위들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