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칼럼] 8월 斷想, 장덕준과 이길용, 그리고 대통령
2017-08-20 20:00
문재인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유공자는 3대까지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더는 안 나오게 보훈에 관한 인식과 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인데, 바른 방향이다. 독립운동 하느라 집안이 풍비박산 나 많은 후손들이 지금도 고초를 겪고 있다. 제때 교육도 못 받아 가난이 대물림되는 현실이 참담하다.
문 대통령은 독립운동가 몇 분을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해 이태준, 장덕준, 남자현, 김용관, 나운규 선생을 각자의 활약상과 함께 소개했다. 그중 첫눈에 들어온 건 장덕준 선생(1892∼1920)이다. 선생은 필자가 몸담았던 동아일보의 대선배 기자다. 1920년 10월 만주 훈춘(琿春)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조선인 학살사건(간도참변)을 취재하러 갔다가 실종됐다. 실종이라지만 일본군에 의해 살해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일본군은 청산리전투에 대한 보복으로 무고한 조선인을 무수히 학살했다.
필자는 30년이 넘는 기자생활의 대부분을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는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보냈다. 한국 최초의 종군기자이자 순직기자인 선생을 보면서 자긍심을 느낄 때가 많았다.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광복절에 독립운동가 여섯 분을 거론하면서 선생을 포함한 것은 그래서 더 남다르게 다가왔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예전 같지 않고, 권언(權言) 간에 갈등도 적지 않지만 우리는 아직도 공유(共有)할 역사가 더 많다고 생각했다.
스포츠 담당 중견언론인들의 모임인 한국체육언론인회(회장 이종세)는 25일 서울 만리동 손기정 기념관에서 ‘이길용 기자 흉상 제막식’을 갖는다. 이길용 선생(1899∼?)은 1936년 8월 9일 손기정 선생이 독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때 그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인공이다. 선생이 한국 독립운동사에 남긴 족적이 어디 스포츠와 미디어에만 국한되랴마는 선생은 이 분야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표(師表)와도 같다. 선생에게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진실을 추구하는 용기를 배운다.
그럼에도 동상 하나 없다. 6·25 때 납북돼 묘조차 없다. 가족들은 비석 하나 세우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1989년 그의 이름을 딴 ‘이길용 체육기자상’이 제정됐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지만, 모두들 그를 기릴 수 있는 작은 기념비라도 하나 있었으면 했다. 그 숙원이 한국체육언론인회란 순수 민간단체에 의해서 풀린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공교롭게도 이길용 선생도 동아일보 출신이다. 그간 선생의 일장기 말소 의거를 흠집 내려는 시도도 더러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최초 보도는 동아일보가 아니라 당시 조선중앙일보가 했다” “이길용 기자의 우발적 행동이었지 동아일보사 차원의 대응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이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난 지 오래다. 보도도 그해 8월 13일 동아일보가 지방판을 통해서 맨 먼저 했고, 일장기 말소도 개인행동이 아닌 사(社)의 전통과 사시에 따른 대응이었음이 선생의 수기를 통해 드러났다.
그 밖의 주장들에 대해선 대꾸할 가치를 못 느낀다. 중요한 건 이런 수준의 공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의 흉상 건립에 반대한 체육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섰다고 들었다. 필자가 소중하게 여기는 건 이 부분이다. 아무리 작은 사안도 ‘역사’에 관한 것이면 늘 시빗거리가 되고 끝내 이념논쟁으로 비화하는 걸 질리게 봤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대는 일들이 잦아졌다. 사드(THAAD) 문제만 해도 본질은 제쳐두고 부차적인 이슈들을 놓고 논쟁 중이다. 탈(脫)원전 논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숙의 민주주의의 실험’으로 포장되고 있지만 보혁(保革) 간 세 대결 양상이 짙다. “팩트의 엄밀함과 절차의 민주성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강변하나 이면엔 서로에 대한 타성적 반대와 불신, 적의(敵意)가 꿈틀거리고 있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일의 성사를 방해하고 상대방에게 타격만 주려고 한다. 이래선 될 일도 안 된다.
체육인들의 이길용 선생 흉상 건립은 그래서 더 값지다. 모름지기 일이란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먼저 뜻을 모으고, 목표를 위해선 사소함 따위는 덮어두면서, 오직 본연의 의의를 구현하기 위해 함께 나아가는 것, 그것이 곧 화합이고 실용이고 효율일 것이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에 독립운동가 6인 중 한 분으로 “동아일보 장덕준 선생”을 거명했을 때 적이 놀랐다. 노무현 정부 이래 현 여권세력과 보수언론과의 관계가 편치 않은 건 사실이다. 보도를 놓고 충돌한 적도 많다. 그런데도 많은 선열 중 굳이 동아일보 장덕준 선생을? 필자로서는 그 경위를 알 길이 없지만 웬일인지 화합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문재인 역시 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다”고 했기에 더 그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