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2] 샤먼은 어떤 역할을 했나? ②
2017-08-16 15:11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운명을 미리 점쳐 주는 일,
병이 들었을 때 악귀를 진정시켜 주는 일,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의 영혼이 떠나도록 하는 일,
가뭄이 들었을 때 비를 불러오는 일, 축제 때 제사를 관장하는 일,
이 모든 일들이 샤먼, 그들의 몫 이였다.
자연히 그들의 지위도 부족장과 대등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부족장의 지위를 능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 신탁 통해 "하늘의 선택" 유포
테무진이 새 정권 탄생이 임박한 시점에서 가장 힘을 쏟은 부분이 바로 이들 샤먼들을 끌어들여 추종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이들 모두는 신의 이름을 빌어서 말하는 신탁(神託, 신이 사람을 매개로 그 뜻을 나타내는 일)을 통해 테무진을 하늘이 선택한 사람이라고 선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도록 도와주었다.
▶ 대중 조작에 앞장 선 무칼리
"테무진이 하늘의 계시를 받아 칸이 될 것이다." 이 신탁사를 최초로 널리 퍼뜨린 샤먼은 무칼리였다.
테무진을 만난 즉시 평생을 모실 주군임을 한눈에 알아본 그는 테무진을 등극시키기 위해 샤먼이라는 지위를 활용하는 대중조작을 서슴지 않았다.
대몽골 제국이 탄생하던 해 세 번째 천호장으로 제수 된 그는 칭기스칸의 사준마(四駿馬) 가운데 한사람으로 칭기스칸이 서역 원정을 떠날 때 권 황제로 임명돼 금나라를 통치하면서 동방 개척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무칼리의 동방세력은 나중에 칭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가 대칸으로 가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이 무칼리와 관련해 프랑스의 몽골학자 펠리오는 그를 고려의 유민 출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돌궐족이 남긴 퀼테킨 비문에서도 나타나듯이 돌궐이 고구려를 보칼리로 불렀고 티벳에서도 고려를 무쿠리로 불렀다는 점에서 음성학적으로 봤을 때 그의 집안이 고려에서 흘러 들어오지 않았겠느냐고 추정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를 고려 유민의 후예로 볼 확실한 근거는 아직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 굳어지는 '하늘의 선택' 설
자모카와 헤어지기 전에 이미 나돌기 시작한 ‘하늘의 선택’설은 몽골의 유명한 대샤만 코르치가 테무진과 자모카가 갈라설 때 공개적으로 이를 다시 확인하면서 더욱 굳어졌다.
"보돈차르 성조께서 잡아온 여자에게서 태어난 우리는 자모카와 배도 하나, 양수(羊水)도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모카를 떠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하나의 계시가 내려와 그 내용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담황색 암소가 와서 자모카의 주위를 돌며 그의 수레를 들이받고 자모카를 들이받았습니다.
그 암소가 한쪽 뿔이 부러져 짝짝이가 되자 자모카에게 흙을 끼얹으며 뿔을 돌려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이번에는 암소가 아니라 뿔이 없는 담황색 황소가 테무진 뒤에서 포효하면서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황소가 ‘하늘과 땅이 서로 논의해 테무진을 나라의 주인으로 삼기로 해서 나는 그 나라를 싣고 온다’ 고 했습니다.
이 신탁을 하늘이 내게 보게 하고 계시를 내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대 샤먼 코르치의 이 같은 신탁이 어떤 작용을 했을 지는 자명하다.
테무진이 즉석에서 코르치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만호장(萬戶將)의 지위와 함께 미녀 30명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만 봐도 그 파장을 짐작할 수 있다.
▶ 결정적인 텝 텡그리의 신탁
그러나 테무진의 입지를 확실하게 만들어 준 결정적인 인물은 텝 텡그리라는 별명을 가진 몽골 제일의 샤먼 커커추였다.
‘천신(天神)’, 또는 ‘하늘같이 높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텝 텡그리라는 별명에서도 나타나듯이 커커추는 신통력이 아주 뛰어난 샤먼이었다.
텝 텡그리는 일찍부터 예수게이 가족에게 봉사해 온 가신 멍리크의 아들로서 그의 할아버지 대부터 예수게이 집안에 봉사해온 너흐르(충성스런 신하)였다.
"하늘이 테무진에게 이 대지를 통치케 할 것이다"
그는 이러한 예언을 여러 차례 했다. 한번은 한겨울에 벌거벗은 몸으로 황야를 헤매다 돌아와 "신이 나에게 말하기를 ‘대지 위의 모든 것을 테무진과 그의 자식에게 주었으니 마땅히 다스리도록 전하라’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텝 텡그리의 말이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은 어느덧 테무진을 하늘이 선택한 사람으로 믿어 가고 있었다.
테무진은 이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텝 텡그리를 전적으로 믿고 무조건 그의 말에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