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무정맹어호(無政猛於虎)
2017-07-26 19:00
준비 기간인 인수위도 없었고, 번듯한 취임식도 치르지 못한 채 당선증 하나만 달랑 받아들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통령 파면이라는 유례 없는 국난 탓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촛불 여망을 담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하며 쉼 없이 달려온 지난 석 달 동안 국민들은 비로소 ‘아, 정권이 교체됐구나’를 실감할 수가 있었다.
취임 직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백지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세월호 기간제교사 순직 인정 등이 대통령 지시 사항으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80%를 웃도는 고공지지율에 기대어 ‘개혁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배 띄우자’는 격이다.
국정기획자문위가 두달 만에 내놓은 100대 국정과제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총망라했다.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를 사람 중심 경제로 바꾸겠다는 경제 패러다임 대전환과 함께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어젠다를 제시했다.
정책과제 추진을 위해 소요되는 178조원이라는 재원 마련을 위해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증세 논의도 불을 붙였다. 탈원전 기조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전면 중단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도 출범시켰다.
문 대통령이 내놓은 1호 개혁 정책은 ‘적폐 청산’이다. 과거사 진상 규명과 보상을 위한 화해와 치유재단을 재가동하고, 참여정부 범정부 기구였던 반부패기관협의회도 다시 열어 부패와의 전쟁도 선포했다.
문재인표 개혁은 곧 역사, 이념, 경제, 교육, 복지 등 한국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해방 이후 70년 동안 기득권을 지켜온 세력과의 ‘전면 전쟁’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곳곳이 온통 지뢰밭이다.
문제는 전선이 확대될수록 개혁의 선택과 집중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보수 기득권 세력의 개혁 저항이 거세질수록 여론도 흔들린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개혁 추진 동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나라의 백년대계를 다시 세운다는 역사적 사명감과 개혁 당위론이 앞선 나머지 조급하게 추진하다 보면 자칫 교조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국민의 폭넓은 지지와 사회적 공감대가 없는 개혁은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다.
갈등 시비가 큰 정책마다 정쟁으로 치닫다 보면 국민의 개혁 피로감만 쌓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정쟁으로 개혁 골든타임을 흘려보낸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결국 국민과의 괴리에서 비롯됐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사납고 성난 민심은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 苛民猛於虎, 예기 '단궁하편')”는 경구는 이미 탄핵정국 때 촛불민심으로 증명됐다. 여기에 무정맹어호(無政猛於虎)가 하나 더 붙었다. “무능한 정부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가 순항하기 위해선 개혁의 방향과 속도를 국민의 뜻과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특히 국민의 피부에 와 닿고 국민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 개혁과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결국은 민생이다. ‘배 부르고 등 따습게 그리고 눈물을 닦아주는 정부’, 그게 바로 국민이 바라는 정부, 상식이 바로 선 ‘나라다운 나라’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다”고 했다. 담쟁이덩굴처럼 국민과 한 몸으로 뒤엉켜 ‘어쩔 수 없는 벽’을 함께 넘을 때 5년 뒤에는 성공한 문재인 정부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