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장 동화스럽고, 가장 불편한 이야기…봉준호 감독 '옥자'
2017-06-29 16:36
그러던 어느 날, 강원도 산골에 글로벌 기업 미란도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약속한 10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잘 자란 옥자를 끌고 뉴욕으로 가버리고 미자는 크게 분노한다. 할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 무작정 옥자를 찾아 나서고 이 과정에서 동물보호단체인 ALF와 만나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선다.
영화 ‘옥자’(감독 봉준호)는 올해 가장 뜨거운 작품이었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넷플릭스의 첫 영화이자 한국극장에서 개봉하는 첫 번째 넷플릭스 영화, 동시에 멀티플렉스에 걸리지 못한 영화다.
개봉 전부터 온갖 논란에 시달려온 ‘옥자’는 영화 자체로도 뜨거운 논쟁거리를 가진다. 동물과 사람의 관계를 그리며 이면에 숨은 유전자 조작, 자본주의 구조, 공장식 축산을 문제 삼는다. 인간의 이중성이 드러나며 벌어지는 참극은 봉준호 감독이 그간 그려온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봉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옥자’는 자본주의·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관람 포인트가 크게 갈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입장과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봉 감독의 말처럼, 각각의 인물들이 가지는 사상·입장이 분명하고 디테일 역시 세심해 어느 인물이든 몰입할 여지가 충분하다. 촘촘한 연결고리와 깨알 같은 설정은 봉 감독의 장기이자 관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요소기도 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관객이라면 ‘옥자’에 더할 나위 없이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자와 옥자가 가지는 긴밀한 관계, 감정은 가슴을 일렁이게 하며 옥자를 구하기 위한 미자의 여정이나 옥자가 당하는 처절한 상황은 호러영화만큼 두렵고, 공포스러우며 잔혹하다.
영화의 톤 역시 흥미롭다. 강원도 산골에서 여유를 즐기는 옥자와 미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를 연상케 하는 풍취를 가지고, 이후 옥자를 구하기 위해 벌어지는 여정은 여느 어드벤처 영화에 뒤지지 않는 액션·속도감을 가진다. 코미디·스릴러·공포·액션의 장르를 쥔 ‘옥자’는 봉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가장 욕심을 낸 작품처럼 보인다.
극 중 캐릭터들도 흥미롭다. 미자를 비롯해 미란도 CEO 루시 미란도, ALF의 리더 제이(폴 다노 분)와 2인자 케이(스티븐 연),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질렌할) 등 다소 과장된 캐릭터들은 시대와 성향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며 관객들의 재미를 끌어낸다.
늘 그렇듯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미자 역의 안서현과 희봉 역의 변희봉, 루시 미란도 역의 틸다 스윈튼과, 죠니 역의 제이크 질렌할, 제이 역의 폴 다노, 케이 역의 스티븐 연 등. 국적과 상관없이 ‘옥자’ 안에서 어울리는 모습은 강제성 없이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받아들여진다. 봉준호 감독이 일궈놓은 세계관과 그 안에서 뛰어노는 배우들의 모습, 뛰어난 풍광과 풍취로도 극장에서 볼 이유가 충분하다. 29일 개봉이며 러닝타임은 120분, 관람 등급은 12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