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김성한 현대무용협동조합 이사장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게 현대 무용 정신”
2017-06-23 04:02
현대무용협동조합, 대중성과 순수 예술 모두 잡을 것
한국 현대무용계, 정부 지원 의존 벗어나 경쟁력 키워야
한국 현대무용계, 정부 지원 의존 벗어나 경쟁력 키워야
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관객 없는 공연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대무용 협동조합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자고 결심하게 됐죠. 사람들에게 현대무용 자체를 가르친다기보다 현대무용의 움직임부터 체득시켜서 무용의 다양성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세컨드네이처 댄스 컴퍼니 단장이자 현대무용협동조합 초대 이사장으로 뽑힌 김성한 이사장은 지난 16일 강동아트센터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던 현대무용가들이 ‘예술의 대중화, 대중의 예술화’란 슬로건 아래 한데 뭉쳤다. ‘코스프레처럼 즐겁고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를 목표로 벌써부터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현대무용협동조합,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
현대무용은 여러 예술 장르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장르로 손꼽힌다. 이 때문에 관객들도 이해하기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연극이나 뮤지컬을 비교적 많이 관람하고 있는 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대무용의 대중화’는 늘 현대무용가들의 고민이자 해묵은 과제였다.
김성한 이사장은 “현대무용이란 장르 자체가 일반 대중보다는 마니아들을 위한 공연이다. 장르 특성이 그렇다”면서 “공연 생태계에서도 현대무용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현대무용을 하는 사람들이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노력을 안 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현대무용계를 되돌아 봤다.
이어 그는 “지금과 같은 현대무용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현대무용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다. 현대무용에도 다양성이 필요한데, 기존에 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급하겠다는 차원이기도 하다”고 현대무용협동조합의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현대무용협동조합 설립에 참여한 10개 단체는 (사)트러스트 무용단, 파사 무용단, 세컨드네이처 댄스 컴퍼니, 더바디 댄스 컴퍼니, 로댄스 프로젝트, 오마이 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 EDx2무용단, 엠비규어스, 고블린파티, STL ART 프로젝트로 이미 국내에서 최고란 평가를 받고 있는 무용단들이다. 각자 꾸준한 작품연구와 정기·초청공연을 통해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공연단들로,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안무가들로 구성됐다.
김 이사장은 “현대무용단들이 많다. 심사숙고하는 과정을 거쳤고, 같이 하고 싶었지만 고사한 단체도 있었다. 직접 찾아가서 설득한 부분도 있다”면서 “나이대도 31살부터 50대 후반까지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 잘할 수 있는 분들로 10개 팀을 모았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댄싱9 출신도 두 명 있다. 그런 부분이 대중화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무용협동조합의 영문인 코다(CODA)에서 따온 코다이즘(CODAISM)은 새롭게 출발하는 현대무용협동조합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잘 나타낸다. 김 이사장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적 상황과 난해하고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현대무용의 한계를 우리 스스로가 뛰어 넘지 않으면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며 “이번 현대무용협동조합 창립을 통해 시민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지원보다 스스로 경쟁력 키워야
김 이사장은 프랑스 장-프랑수아 뒤루르 무용단, 아리엘 무용단, 브루노 자캉 무용단 등에서 활동한 무용수 출신 안무가로 한국 최초로 유럽에 진출한 프로페셔널 한국 남성무용수다. 2014년부터 ‘인간단테’, ‘구원의 기획자’, ‘구토’, ‘아유레디?’, ‘눈먼자들’ 등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춤의 세계를 보여줬으며 동시에 높은 테크닉과 파격적인 안무, 환상적인 무대연출로도 유명하다. 그런 김 이사장이 바라본 한국 현대무용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그는 “우리나라의 무용과 수는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많다. 그렇게 많은 무용수들이 나오는데 갈 곳은 없다.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꿈같은 얘기다. 시즌제 무용수가 많다 보니 4대보험이나 연금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무용수들은 무용에 모든 것을 바쳤는데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그래도 요즘 젊은 무용수들은 요가 자격증도 따면서 각자 살 길을 헤쳐가지만, 정작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춤은 추지 못하는 현실이다. 현대무용협동조합이 춤을 출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런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문화예술계에서는 정부의 지원이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기보다 예술인 스스로 경쟁력과 자립심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정부 지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긴 하지만, 문예진흥기금이 바닥나고 있다. 정부 지원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거기에 목숨까지 건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자립심을 가져야 한다. 사업을 해서 돈을 벌 수도 있겠지만, 재능 기부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현대무용협동조합은 현대무용수 복지와 생활안정을 위한 자립기반 조성, 조합원 간 교류협력을 통한 동반성장, 취약계층과 소외계층의 문화지원사업, 청소년 예술교육과 진로체험학습 기회 제공 등 현대무용계의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에고이스트’ 현대무용가들 뭉친 것 자체가 의미 있어
김 이사장은 현대무용가를 두고 ‘에고이스트(egoist)’라고 여러 차례 일컬었다. 에고이스트의 사전적 의미는 이기주의자란 뜻이지만, 김 이사장이 말하는 에고이스트는 자기애가 강하고 자기 철학이 뚜렷한 사람을 뜻한다. 다시 말해, 현대무용가들 대부분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무용이란 장르 자체가 에고이스트적이다. 자기 색깔과 자기 철학에 빠져드는 작업이다. 자기가 뭔가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는 남에게 나눠주기가 힘들 수도 있다”며 “이런 사람들이 조합을 통해 모인 것만 해도 관심거리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무용가들이 모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사실 김 이사장은 좋은 안무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이사장이란 직책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 자리가 무겁게 느껴질 뿐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기도 벅찬데 다른 무용가들까지 먹여 살릴 고민을 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그는 “어느덧 내 나이 50이 됐더라. 숨어서 내 것만 할 게 아니란 생각에 나서게 됐다.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을 보는 스타일인데, 이 직책을 맡으면서 뭘 하고 싶다기보다 실패하더라도 더 처절하게 노력해보고 싶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후배들이 이어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김 이사장은 “현대무용이 난해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데에는 정답을 교육하는 문제도 있다. 현대무용은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하고 '왜'라는 고민을 하게 한다. 한국 사회의 환경 자체가 고민하는 걸 싫어한다. 내 삶이 힘든데 누가 고민을 하고 싶겠나. 기존의 것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재밌는 공연도 만들고 순수예술에 집중한 공연도 만들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김성한 현대무용협동조합 이사장
△1968년생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공연예술협동과정 석사 △장프랑수아뒤루르무용단 단원(1995~1996) △아리엘무용단 단원(1996~1998) △브루노자캉무용단 단원(1998~2001)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2003~) △세컨드네이처댄스컴퍼니 예술감독(2005~)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예술위원(2008) △국립현대무용단 비상임이사(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