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숙희(김옥빈 분)에게 중상(신하균 분)은 연인, 그 이상이다. 어린 시절 눈앞에서 아버지를 잃고 팔려온 숙희를 거둔 상중은 그를 보살피며 살인 기술을 가르친다. 킬러로서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숙희지만 “중상과 함께라면 복수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숙희는 중상과 결혼하지만, 또다시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 중상의 복수를 위해 마약 사건에 연루된 조직을 박살 내고 경찰에 붙잡힌다. 국가 비밀 조직의 간부 권숙(김서형 분)은 숙희의 능력을 높게 평가, “10년간 국가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면 자유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뱃속에 중상의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 숙희는 이를 받아들인다.

바깥세상으로 나와 임무를 수행하게 된 숙희. 그는 배우라는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고 아이와 함께 소소한 일상을 즐긴다. 이를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국정원인 현수(성준 분)가 신분을 숨긴 채 숙희에게 접근한다. 두 사람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결혼까지 결심한 가운데 예상치 못한 인물이 숙희의 타깃이 되며 거짓된 삶에 균열이 생긴다.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을 알아버린 숙희가 반격에 나선다.

영화 ‘악녀’(제작 ㈜앞에있다·배급 NEW)는 ‘우리는 액션배우다’, ‘내가 살인범이다’의 연출을 맡은 정병길 감독의 신작이다.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돼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얻었다.

영화는 시종 관객들을 자극한다. 지루할 틈이 없다는 이야기다. 굵직한 스토리를 따라 거침없이 달려가는 것은 ‘악녀’의 주 무기. 특히 FPS(First-person shooter, 1인칭 슈팅 게임)을 연상하게 만드는 오프닝 시퀀스는 ‘악녀’의 선전포고와 같다. 이미 많은 매체에서 주목한 바 있는 1인칭 액션은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닌 체험의 단계로까지 이끈다. 오프닝 시퀀스를 비롯해 한복 액션, 오토바이 액션, 버스 액션 등 굵직한 액션들을 배치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음향과 음악 역시 빼어나다. 숙희의 격렬한 액션에 맞춰 울리는 꽹과리 소리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악녀’는 목적이 명확한 만큼 내려놓고 가는 것 역시 확실하다. 스토리적 부재 내지는 단편적인 캐릭터들은 드라마를 입체적으로 끌고가지는 못한다. 그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결한 이야기는 압도적인 액션 시퀀스와 결합, 결코 속도를 늦추는 법이 없다. 모든 인물과 이야기는 폭주 기관차처럼 결말을 향해 달린다. 과연 여성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셈이다.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인 만큼 주연 배우인 김옥빈과 김서형의 존재감이 압도적으로 느껴진다. 진실을 맞닥뜨리거나 영화 말미 서늘한 눈빛을 보내며 웃음을 터트리는 김옥빈의 얼굴은 ‘악녀’의 정서를 완벽히 대변하고 있다. ‘악녀’ 속, 김옥빈을 대체할 배우는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김서형 역시 마찬가지. 극의 중심을 잡고, ‘악녀’로 태어나는 여성들을 아우르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낸다. 강하고, 거침없으며 망설이지 않는다. 러닝타임은 123분, 관람등급은 청소년관람불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