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배려석' 앉기 눈치 보는 임산부… 일반인 역성에 여전히 '그림의 떡'

2017-06-04 22:10

임산부를 위한 각종 배려 정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정작 '임산부 배려석'을 마음 편히 이용하지 못하는 임산부들이 늘고 있다. [아주경제DB]


아주경제 조득균 기자 = #임신 2개월차인 김모씨(38)는 지난 3일 지하철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일명 핑크석으로 불리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서 이동하는 찰나에 갑자기 한 여성이 나타나 다리를 툭툭 치는 것이었다.

태교 음악을 듣고 있던 김씨는 서둘러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 여성은 전후 사정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김씨에게 "저기요 좀 비켜주세요. 여기 임산부석이거든요"라며 큰소리를 쳤다. 김씨는 비도덕적이고 몰상식한 여성의 행동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임산부를 위한 각종 배려 정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정작 '임산부 배려석'을 마음 편히 이용하지 못하는 임산부들이 늘고 있다.

보통 임신 초기의 경우 육안으로 배가 많이 나와 보이지 않아 '임산부 배려석'에 앉기까지 눈치를 보고, 일반인부터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에게까지 밀려 좌석을 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임신 4개월차인 이모씨(43)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신 초기에 불편함이 없을 거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여성은 임신한 것 자체만으로 몸에 큰 변화가 생겨 기력이 약해지는 것은 물론 심한 경우 어지럼증까지 발생한다"고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정부는 2013년부터 수도권 지하철에 차량 1대당 2석씩 총 7100개의 임산부 배려석을 마련했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마치 자신의 자리인 것처럼 임산부 배려석을 떡하니 차지하는 '얌체족'들이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시민들의 건의가 빗발치자 서울시는 2015년 7월부터 임산부 배려석을 보다 확실히 알아볼 수 있도록 배려석 뒤쪽 벽과 좌석, 바닥색을 분홍색으로 디자인했다. 또한 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에도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고 양보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임산부들 사이에선 크게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임산부 배려석에 써 있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임산부를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14년 임산부 2400여 명과 일반인 2100여 명을 대상으로 임산부 배려 인식 실천수준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임산부 44.2%가 '배려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임신 3개월차인 최모씨(26)는 "얼마 전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데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자리에서 비키라는 식으로 역성을 내고 지나갔다"면서 "배가 불룩하게 나와야만 임산부인가요?"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배려문화를 통해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배려문화에는 분명 한계성이 존재한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임산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을 앉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면서 "지속적이면서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통해 임산부석 배려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