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명의(名醫) 이시진의 고향-후베이성 치춘현
2017-06-01 16:29
인민화보 판정(潘征) 기자 =후베이(湖北)성 동남쪽에 위치한 치춘(蘄春)현은 북쪽으로 다볘산(大别山)을 끼고 남쪽으로는 창장(長江)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다. 신기하게도 북위 30도 기준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치춘현의 중간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 이처럼 특수한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치춘현에는 특유의 생태문화와 산간 마을문화, 종교문화, 의약(醫藥)문화, 섭생(養生)문화 등이 생겨났다. 이 중에서 치춘현의 보물과도 같은 자산을 꼽자면 단연 의약문화와 섭생문화를 들 수 있다.
중국 의약의 본고장
치춘현을 얘기할 때면 명나라 시기 뛰어난 의약학자 이시진(李時珍)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필생의 힘을 기울여 집필한 <본초강목>은 16세기 이전 중국의 의약과 치료 사례를 체계적으로 종합한 저술로서, 과학성과 실용가치 면에서 세계 약학계 및 의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시진은 1518년 치춘현 치저우(蘄州)진에서 태어났다. 당시 치저우진은 이미 중국에서 약재의 생산지와 집결지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본초강목>의 기록에 따르면 ‘애엽(艾葉·쑥잎)은 치저우 것을 우수하게 여긴다. 수령에게 보내는 방물(方物)로도 쓰이며 천하에 귀한 것으로 치저우 애엽(蘄艾)이라 일컫는다. 다른 지역의 애엽으로 쑥뜸을 뜨면 술단지에 공기가 스며들지 않지만, 치저우 애엽으로 뜸을 뜨면 곧바로 공기가 통하는 점이 남다르다’고 쓰여있다. 당시 치저우의 애엽이 전국에서 얼마나 우수한 약재로 평가 받았는지 잘 알 수 있다.
치춘현에는 오래 전부터 약과 관련된 표현이나 관습들이 많다. “가리키는 풀마다 모두 약초이고, 길가는 아무 사람을 붙잡아도 의학을 안다”, “집집마다 창애(菖艾·창포쑥)가 걸려있고, 10리 밖에서도 약초 향기가 난다”등이 그것이다. <본초강목>에 기록된 1892가지 종류의 약초 가운데 치춘현에 만약 700가지가 넘게 몰려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치춘현의 쑥·뱀·대나무·거북을 가리키는 기애(蘄艾)·기사(蘄蛇)·기죽(蘄竹)·기귀(蘄龜)는 이곳의 네가지 보물(蘄春四寶)로 취급된다.
자연에 둘러싸인 섭생의 천국
이처럼 유구한 의약문화 덕분에 치춘현에는 건강과 섭생을 위한 기반이 잘 조성되어 있다. 또 수려한 산수와 자연경관은 아름다운 마을로 서치춘현의 면모를 더하고 있다.
치춘현의 남부에 위치한 츠룽후(赤龍湖) 습지공원은 창장에서 약 2.5km 떨어져 있다. 창장의 하상변동으로 인해 제방 사이에 생겨난 와지호(洼地湖)로서 전체 면적이 100km2에 달한다. 아직 원시적 생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츠룽후에는 여러가지 아름다운 볼거리가 많다. 삼면이 구릉으로 둘러싸인 까닭에 호수의 수면에서 전형적으로 볼수있는 단일한 뭍의 곡선에서 탈피했다. 덕분에 ‘산속에 호수가 있고, 호수속에 섬이 있는(山中有湖, 湖中有島)’ 복잡한 풍경구조를 이뤘다.
이 지역은 또한 기후가 온화하고 강수량이 충분해 식물이 잘 자라고 녹음이 우거졌다. 국가1급 보호동물인 홍부리 황새, 황새, 홍대머리 황새, 먹황새 등이 자주 목격되고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철새인 백로, 황로, 청둥오리, 갈매기 등도 대량으로 서식하는 등 사람과 동물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치춘현에 오면 빠질 수 없는 코스 중 하나가 바로 헝강산(横岗山)이다. 헝강산은 치춘현을 가로지르고 우쉐(武穴)시 두 개현이 걸쳐 있으며 후베이성과 안후이(安徽)성까지 뻗어있다. 최고봉은 815m로, ‘후베이의 동쪽병풍’이라는 별칭이 있다.
헝강산에 오면 이곳의 가장 큰 특징 세 가지를 발견할수 있다. 바로 ‘수많은 절, 희뿌연 안개, 기이한 암석’이다.
헝강산에는 전우뎬(眞武殿), 성무뎬(聖母殿), 주예뎬(祖爺殿), 위황뎬(玉皇殿), 윈가이쓰(雲蓋寺), 러왕뎬(藥王殿), 다스거(大士閣), 준티뎬(準提殿), 다슝바오뎬(大雄寶殿), 톈왕뎬(天王殿), 차이선뎬(財神殿), 완포뎬(萬佛殿), 디창쓰(地藏寺) 등 절과 사당이 매우 많다. 절이 많다는 것은 헝강산의 독특한 점 중 하나다. 1300여 년 전 헝강산의 형(荊), 예(豫), 오(吳) 지역 일대는 도교와 불교 등 종교활동의 주요 근거지였다. 역대 많은 문인과 묵객(墨客)들이 이곳을 찾았다.
헝강산의 안개는 변화무쌍하고 그 모습도 천태만상이다. 한번 안개가 일면 순식간에 산줄기가 운해(雲海)로 덮이거나 산봉우리 틈을 뿌옇게 가리기도 하고, 아예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산을 완전히 에워싸기도 한다. 독특한 매력을 지닌 산안개는 헝강산의 큰 특징이다.
산이 있는 곳에는 암석도 있게 마련이다. 암석에는 기이한 모양을 띤 것들이 있다. 헝강산에는 이런 기암괴석이 많다. 석패방(石牌坊), 황옥(黃玉), 용두석(龍頭石), 계관석(雞冠石), 사신애(舍身崖), 선녀초록애(仙女召鹿崖), 귀타경서석(龜馱經書石) 등의 암석과 절벽에는 각각 낭만적인 전설도 얽혀있다. 이 중에서 지세가 험준한 ‘사신애’는 높이가 30M가 넘고 수직으로 직하하는 아찔한 낭떠러지다. 맑은 날 사신애에 오른 등 산객들은 치춘현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농가와 전답의 아기자기한 모습 등 마을 곳곳의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불교 선종의 제4조(祖) 도신(道信·AD 580∼651)이 이곳에서 참선 수련을 한 적이 있어 후대 사람들에 의해 사신애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헝강산의 가장 대표적인 암석은 단연용두석이다. 산정상에 위치한 용두석은 비상하는 용머리와 모습이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용두석의 양지와 음지쪽에는 유명인들의 석각이 새겨져있다. 음지에는 거대한 양각으로 ‘운(雲)’자가, 양지에는 음각으로 ‘시문(時文)’이 각각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이러한 음양의 상호 조화는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듯 자연스럽다. 전설에 따르면 당나라때 헝강산에 있는 큰강에 사는 아홉마리의 용이 날뛰며 백성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옥황상제는 진무조사(眞武祖師)와 탁탑천왕(托塔天王) 이정(李靖)으로 하여금 하늘의 군사를 이끌고 용의 무리를 제압하라 명하였다. 그 후 용들이 누워있던 곳에 헝장산(横江山) 또는 헝강산이라 불리는 산이 하나 생겨났다. 나중에 용이 굴복하지 않자 진무조사는 큰 돌을 들어 용들의 머리를 눌러 놓았다. 이 돌이 바로 용두석이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