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함께였기에 가능했다”…아시아 최초 동성혼 합법화

2017-06-01 14:20

 

[엄선영 대만통신원]


아주차이나 타이베이(대만)=엄선영 통신원
 
대만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대만 최고법원인 사법원(대법원)은 지난달 24일 대법관 심리를 통해 동성결혼을 금지한 현행법이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이날 대법관회의에 참여한 대법관 14명 중 12명이 위헌 결정에 찬성했다. 사법원은 동성인 두 사람이 친밀함과 배타성을 동반한 영구적 결합을 금지하는 것이 결혼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2조와 ‘인민 평등권’을 규정한 헌법 7조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대만 의회는 2년 이내에 관련 법 개정을 정비해 동성 커플의 결혼신고를 수리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2년 내에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동성 커플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대만의 현지 분위기는 법제화 그 자체보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더욱 주목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2014년 한 여론조사에서 대만 인구 절반 이상이 ‘동성혼’을 지지했다. 동성혼은 동성애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수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에서는 동성혼 지지율이 80%를 넘는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타이베이에서 만난 24세의 한 남성은 “대만에서는 젊은 사람은 거의 모두 동성혼인 법제화를 지지한다”면서 “물론 중년 이상의 사람 중에서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단 대만에서는 한국과 달리 명칭부터 성 소수자라고 부르기보다는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로 지칭한다. 성 소수자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타이베이 시내 주택가 골목에서는 LGBT+의 상징 깃발인 무지개 깃발(Rainbow flag)가 밖에 걸려 있는 카페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타이베이시 한 주택가에 걸려 있는 무지개 깃발.[사진=엄선영 대만통신원]

체격은 남자인 것 같은데 여자 옷을 입고 화장을 한 사람이 거리를 걷는 모습이나 동성 간에 가벼운 포옹과 입맞춤을 하는 장면도 낯설지 않는 풍경이다.

성 정체성에 대한 ‘커밍아웃’ 역시 자유로운 편이다. 사실 동성혼 합법화의 시작도 2013년 대만의 성 소수자 활동가인 치자웨이(祁家威)의 헌법소원 제기에서 촉발됐다.

천위화(陳玉華) 대만대학교 교수는 판결 이후 강의 중에서 “이번 헌법 해석 결과는 향후 평등권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평등권만큼은 대만이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앞서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만에서 동성혼이 합법화된 바로 그날, 한국에서는 게이라는 이유로 구속된 한 군인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만의 한 대학생은 “한국 동성애 군인의 처벌 관련 신문기사를 봤다”면서 “한국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더 많이 토론할 수 있었으면 하고, 이번 결과를 통해 대만이 다른 아시아 지역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와는 다르지만 함께 기뻐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소수’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의미가 있었다.

당사자들만 외롭게 홀로 권리를 주장했다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본인들만큼이나 간절하게 바라고 함께 해주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대만에서의 동성혼 합법화는 가능한 일이었다.

동성혼인 법제화와 관련해 거리에 붙어 있는 포스터의 모습.[사진=엄선영 대만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