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증' 환자 늘어난다…"비행기 회항하는 사례도"
2017-05-30 06:40
방안·차안·지하철·병원 검사실·엘리베이터에서도 발생
"치료 늦어지면 광범위 공포증으로 악화…조기 치료해야"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1. 지난 25일 오후 8시 30분. 부산에서 서울로 가던 비행기가 이륙 직전 갑자기 활주로에 멈춰 섰다. 30대 여성 탑승객이 두려움과 함께 심한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 환자는 당시 승객으로 탑승 중이던 한 의료인과 승무원으로부터 시의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은 끝에 비행기에서 무사히 내렸지만, 나머지 승객들은 자정을 넘겨 서울에 도착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2. 회사원 A(34)씨는 지난해 무서운 경험을 했다. KTX를 타고 출장을 가던 중 터널에 들어가면서부터 갑자기 심장이 뛰면서 숨이 막히고,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A씨는 "손발은 물론이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땀이 났고, 이대로 있다가는 당장 죽을 것 같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다행히 A씨도 같은 칸에 있던 의료진 승객의 도움으로 상황을 잘 극복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A씨는 KTX를 타지 못한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보면 이들 증상은 불안장애의 한 유형인 광장공포증(폐쇄공포증 또는 폐소공포증), 공황장애, 특정공포증 등의 범주에 들어간다.
광장공포증이 갇혀서 탈출할 수 없다는 공포감에 따른 불안과 호흡곤란이 특징이라면, 공황장애는 특별히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신체의 경보 체계가 오작동해서 위협적인 상황과 동일한 '공황발작' 반응이 나타난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서 이들 증상이 겹쳐서 나타나기 때문에 공황장애에 광장공포증이나 특정공포증 등이 동반하는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 중에서도 광장공포증은 0.4%에서 0.7%로, 공황장애는 0.2%에서 0.4%로 각각 증가했다. 비슷한 개념의 사회공포증도 0.5%에서 1.8%로 급증했다.
개인마다 증상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황발작의 경우 10분 이내에 급격한 불안과 동반되는 신체 증상이 정점에 이르며, 20∼30분 정도 지속하다가 저절로 사라진다. 환자들은 죽음이 임박한 것 같은 극심한 불안과 함께 두통, 어지럼, 가슴 두근거림, 메슥거림, 호흡곤란 등을 호소한다.
또 폐쇄공포증이 있는 환자는 불안을 유발하는 장소나 상황을 지속해서 피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심한 경우 비행기나 기차를 타지 못해 장거리를 아예 이동하지 못하거나, 출퇴근시 지하철 대신 버스만 이용하는 등 생활에 지장을 받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우울증이 동반되는 사례도 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해외여행이 늘면서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폐쇄공포증 환자에게서 우울증상이 심해지는 경우도 종종 관찰된다"면서 "만약 도움을 줄 의료진이 없는 비행기나 열차 등에서 공포증 환자와 맞닥뜨린다면 119나 승무원에게 즉시 구조를 요청한 뒤 대화를 통해 편안한 심호흡을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전문가들은 공황장애나 공포증이 신경 전달물질시스템 이상과 같은 신경생물학적 원인, 부모 상실이나 분리 불안 등 개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의 경험,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 등 심리·사회적 요인들의 복합적인 작용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조기 진단과 치료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치료가 늦어져 간간이 일어났던 공황발작이나 공포증이 반복되면 특정 장소나 상황을 회피하게 되고 이후에는 광범위한 공포증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평소 심장질환이나 고혈압이 있었다면 응급상황이 심각해질 수도 있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공포증은 단계를 정해 불안을 유발하는 장소나 상황에 반복적으로 스스로를 노출시켜 안전한 장소라는 것을 자각하게 하면 효과가 있다"면서 "만약 증상이 심하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때는 약물치료를 하거나 왜곡된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는 인지행동치료가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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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