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진 칼럼] 4대강에 번지는 녹조정치

2017-05-29 03:00

[허남진 아주경제 논설고문]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민추협 시절 춘향이의 한(恨)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춘향이의 한은 이몽룡 도령과의 재회로 풀리는 것이지 자신을 괴롭힌 변학도 처벌과는 무관한 거요.”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군부세력은 DJ를 위험인물로 꼽았다. 사형선고와 망명 등 탄압을 많이 받은 DJ가 집권할 경우 보복정치에 나설 것이란 게 기피 사유였다. 대선가도의 DJ로선 이 불신의 녹조를 걷어내야 했다.

“춘향이 한처럼 우리 국민들의 한도 민주주의가 성취되면 그걸로 풀리는 거요. 탄압한 세력을 처벌할 필요가 없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감사 실시를 지시한 뒤 4대강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때맞춰 일부 종편 방송은 4대강의 시퍼런 녹조 특집을 연신 틀어댄다. 20조~30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4대강 사업 탓에 하천이 죽어가고 있다는 게 뉴스의 골자다.

새 정부는 별도로 4대강 16개 보 중 6개를 헐어 내기로 결정했다. 이미 ‘총체적으로 잘못된 사업’이라고 낙인찍힌 4대강 사업이 원상복구의 삽질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어디까지 되돌릴 참인가. 그 복원의 규모는 감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걸로 보인다. 감사는 ‘결코 해선 안 될 사업’이 어떻게 결정됐고, 또 어떻게 졸속으로 추진됐는지, 예산이 엉뚱하게 흘러가진 않았는지 사업 전 과정을 대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감사의 칼끝은 과연 어디까지 갈까. 4대강 사업의 최고 책임자 MB(이명박 전 대통령). 그에게까지 닿을까. 최근 MB는 자전거를 타고 강변길을 달렸다. 일종의 시위다. MB 측은 “가뭄과 홍수 대비를 위한 불가피한 사업”이었다며 “감사는 정치보복”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은 시행 초부터 논란이 거셌다. 물론 그 밑바탕엔 개발이냐, 환경보호냐의 본질적 논쟁이 깔려 있다. 거기에 패거리 논리, 정치 논리까지 복잡하게 뒤섞이며 논란이 증폭돼 왔다. 특히 MB정부 검찰에서 수사받던 노짱(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며 반목과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4대강에 퍼진 녹조처럼 4대강 정치에도 깊은 원한의 녹조가 스멀스멀 번져 있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이 4대강 감사 실시를 지시한 날이 바로 봉하마을 추모식 직전. MB 측 인사들은 이번 감사를 제사상에 올린 일종의 제물이라고 의심한다. 당연히 보복성 씻김굿이 뒤따를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있다.

개발보다는 환경 쪽에 무게를 두는 진보정권인 만큼 보수 정권의 개발사업에 대해 재점검하겠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점검은 어디까지나 정책적 차원에 그쳐야 한다. 문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을 공언하고 ‘협치’를 강조했다. 88%에 이르는 지지도를 보면 그 진정성도 인정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4대강 감사 역시 정치보복이 아닌 통합 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길 기대하고 믿어본다.

감사 결과 이뤄질 4대강의 원상복구 여부도 비상한 관심을 끈다. 어느 정도 규모로 복구될 것인지, 어떤 논쟁이 벌어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결론에 도달할 것인지 등 궁금한 게 많다. 그 과정을 보면 감사의 순수성, 진정성도 어느 정도 판가름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어떤 정책이든 득이 있으면 실이 있게 마련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지고지선의 정책이란 있을 수 없다. 4대강 사업도 다르지 않다. 4대강 사업의 명암은 지금 극심한 가뭄으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편으론 녹조가 더 심각하게 번지며 물 오염 등 부정적 측면이 크게 부각됐다. 반면 보의 물을 끌어다 모내기에 사용하는 등 가뭄 해결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진다.

이번에 실시될 감사에선 폐해와 문제점은 물론 이러한 긍정적 효과까지도 담아내는 종합적인 평가여야 할 것이다. 그 토대 위에서 복원 여부 또한 결정돼야 마땅하다. 이전 정부의 사업이라고 무조건 뒤집어엎는다면 또 다른 예산낭비요, 졸속 행정이다. 물론 정치보복이란 비난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 대통령의 선하고 편안한 모습과 달리 인터넷 상에선 몹시 험악한 분위기라 걱정스럽다. ‘원한’ ‘복수’ ‘감방’ 등 핏발선 용어까지 등장해 살벌하다. 그들의 세계에선 4대강과 MB는 이미 심판이 끝났고, 화해나 협치도 끼어들 자리가 없다. 문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요, 노선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DJ가 해석한 ‘춘향이 한풀이’는 보복을 생략한 대목에서 문학적 풍미를 더한다. 부엉이 바위에 남아 있을 노짱의 한과 그걸 바라보는 노짱 동반자·지지자들의 한 또한 매우 깊으리라 이해된다. 이제 오랜 친구요 동반자인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가슴의 한은 그 자체로 풀렸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땅에 진정한 통합의 정치를 싹 틔우기 위해서도 가슴의 응어리는 훌훌 털어내야 한다.

실제로 DJ는 군부에 대한 보복정치를 하지 않았다. 전임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말끔히 정리한 덕도 크겠지만 어쨌든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오히려 화해의 길로 나서 남북 정상회담을 열었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