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이재용 재판' 정치와 법치 그리고 이치
2017-05-24 07:00
코스피가 이처럼 거침없이 ‘하이킥’을 선보인 데는 외국인 매수세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종목의 상승세 덕이 컸다. 이날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은 미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에도 2890억원을 사들이며 지수 상승에 동력을 제공했다. 특히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주인 삼성전자는 0.85% 오르면서 지수 상승에 힘을 보탰다.
삼성전자는 실적과 주주환원정책이라는 겹호재를 맞아 크게 오르고 있는 추세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매출 50조5500억원, 영업이익 9조9000억원의 실적을 냈다. 분기별로는 역대 두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지주사 전환을 백지화하는 대신 자사주 49조3000억원을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보통주와 우선주에 대해 주당 7000원의 1분기 배당도 결의했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이날 225만5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인텔을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가 될 것이라는 소식 등 호재도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벌써부터 삼성전자가 상승세를 이어갈 여력이 충분하다며 증권사들은 목표주가를 잇따라 상향조정하고 있다. 높게는 330만원에서 낮게 잡은 수준도 300만원에 이른다.
모든 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공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가 지난 3년 간 주도한 내부 개혁과 내로라 하는 기업 인수합병(M&A) 결과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은 축배를 들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 상황은 그렇지 않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의 6.56㎡(약 1.9평)짜리 독방에 수감돼 있는 탓이다. 올해 이 부회장의 보유 주식 평가액이 6167억원 늘어났다는 보도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일가 등에 400억원대의 뇌물을 줬다는 등의 혐의로 지난 2월 구속됐다. 검찰과 삼성 측의 주장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법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최소 수년 간은 경영자로서 손발이 묶일 게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가 될 신사업이나 M&A 등 중대 경영판단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수출을 비롯한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한국 경제에도 머지 않아 암운이 드리워질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염려는 한국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친 삼성측 사람들만의 것은 아니다. 미국의 주간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가 지난 12일 ‘한국 안보를 위협하는 저성장과 허약해진 삼성’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차관을 역임한 제임스 글래스먼은 기고문에서 "최대 기업이자 한국 경제의 보루인 삼성이 리더십의 불확실성으로 위기에 처했다"면서 "한국 경제와 삼성의 미래는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강한 삼성 없이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리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 상황은 삼성에게 결코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 같지는 않다. 박영수 특검팀에 수사팀장으로 참여했던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가 최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된 것은 단적인 예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서울중앙지검의 최대 현안인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 및 관련사건의 공소 유지를 원활하게 수행할 적임자를 승진 인사했다”고 했다. 검찰이 삼성을 상대로 '또 다른 칼’을 빼 들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 부회장의 구속과 재판의 장기화도 예상된다. 삼성으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형국이다.
혹여 오해가 있을까 봐 밝혀두지만, 나는 사법부의 판결을 그 무엇보다도 신뢰하고 존중한다. 재판부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는 데 대해서도 굳건한 믿음이 있다. 그런데 이번 검찰 인사를 보고 삼성 임직원들에 대한 재판 결과는 유죄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고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지난 2일 시작된 증인신문에서 결정적이라 할 만한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또한 특검이 주장한 정황을 뒷받침할 증인들의 증언도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 사실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엄격한 증명’을 바탕으로 한 판결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판결은 부패스캔들 극복에 도움이 되며, 삼성과 국민 모두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