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생태계 바꾸는 IFRS17] IFRS17 도입 … 보험업계 준비금만 40조
2017-05-17 18:45
아주경제 전운 기자 = 새 보험 국제 회계기준(IFRS17)은 13년 전 IFRS4라는 이름으로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보험업계의 반발로 미세조정을 거쳐 오는 19일 기준서가 발표되긴 하지만 기존 예측과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를 뒤흔들 강력한 태풍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보험사들은 IFRS17에 맞춰 상품 구성을 재편하고, 자본 확충에 집중하지만 판도 변화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 준비금만 수십조
IFRS17 도입에 국내 보험사들이 긴장하는 이유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금리 하락 폭이 유독 컸기 때문이다. 국내 보험사, 특히 생명보험사는 과거에 고금리 확정금리형 장기 저축성보험을 많이 판매했다. 국내 생보사가 보유한 부채 가운데 약정이율이 연 5% 넘는 게 30%를 차지한다. 연 7% 넘는 부채도 18%에 달한다.
현행 회계기준은 과거에 판매한 연 7%짜리 확정금리 상품의 경우, 만기에 지급할 보험금에서 연 7%씩 할인한 만큼만 준비금으로 쌓으면 된다.
하지만 IFRS17이가 도입되면 해마다 결산 시점의 시장금리를 반영한 시가(공정가치)를 반영해 추가로 준비금을 쌓아야 한다. 시장금리가 3%라면 연 4%포인트, 금리가 2%로 떨어지면 연 5%포인트만큼 준비금이 늘어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보험업계 부채 증가 규모를 23조~33조원으로 추정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도 지난해 IFRS17 도입으로 보험사 전체 부채가 42조원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정확한 기준서가 나올 때까지 준비금을 확정할 순 없지만 국내 보험업계가 수십조에 달하는 '준비금 폭탄'을 맞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상품 포트폴리오 확 바뀐다
국내 보험사들은 앞으로 저축성보험을 대폭 줄이는 대신 보장성보험과 변액보험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 IFRS17에 따르면 저축성보험에서 올릴 수 있는 매출이 현재 수준에서 70%가량 떨어질 뿐 아니라 수익성 측면에도 도움이 안 된다.
실제 생보사들의 보장성보험에 따른 수입보험료 규모는 2014년 말 33조원 규모에서 2016년 말 40조원가량으로 급증했다. 반면 저축성보험의 수입보험료는 같은 기간 44조원대에 머물러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금리 변동 리스크를 부채에 반영토록 하는 IFRS17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보장성보험과 변액보험으로 영업의 무게 중심을 옮기는 것도 금리 변동 리스크를 덜 수 있어서다"라며 "보장성보험은 저축성 상품에 비해 이자가 적고, 변액보험은 금리 변동 리스크를 소비자가 감수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위기의 토종 보험사
생명보험업계의 지각변동도 불가피하다. 국내 토종 생보사들이 부채 급증을 우려해 저축성보험 판매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사이 중국 자본을 등에 업은 동양생명과 알리안츠생명이 벌써부터 올라오고 있다. 라이나생명, 푸르덴셜생명 등도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내 생보 시장을 외국계에 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중국 안방보험이 대주주인 동양생명과 알리안츠생명은 지난 1분기 월납초회보험료에서 교보생명을 제치고 처음으로 업계 3위에 올랐다
이 같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안방보험의 자금력 덕분이다. IFRS17 시대에 저축성보험을 많이 팔아 부채가 급증하더라도 안방보험이 증자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실제 안방보험은 동양생명에 대해 올해 초 5000여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시행했다. 또 한국 보험사와 달리 보장성보험 비중이 큰 비중을 둬 온 미국계 보험사들은 상대적으로 위협이 덜한 상황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IFRS17 도입은 국내 생보사들에게는 큰 위험요인이다"라며 "지각변동이 불가피하고 이로 인해 도태되는 기업도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