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TV, 때아닌 첩보물 시리즈 방영…'수령옹위' 분위기 고취
2017-05-13 05:10
(서울=연합뉴스) 지성림 기자 = 북한 TV가 김일성의 신변안전을 맡은 특수공작원들의 활약상을 담은 첩보 드라마 시리즈를 매일 방영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조선중앙TV는 지난 8일 오후 8시 30분부터 광복 전후 김일성의 신변안전을 맡은 방첩기관과 특수공작원들의 활약상을 담은 연속극 '방탄벽' 1부와 2부를 처음 방영했다.
이 드라마 방영은 북한의 방첩기관인 국가보위성이 지난 5일 한미 정보당국이 러시아에 파견됐던 북한의 임업 노동자를 매수해 생화학물질 등을 이용해 김정은 암살을 기획했다는 내용의 대변인 성명을 내놓은 지 사흘 만이다.
북한은 이 성명 이후 '김정은 테러 시도' 사건의 배후에 한미 정보기관이 있다고 주장하며 연일 주민들을 내세워 비난과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북한 TV에서 뜬금없이 옛 방첩기관의 영웅담을 담은 드라마를 방영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TV는 8일 이후 매일 저녁, 이 드라마를 1∼2개 부씩 내보냈으며, 13일에도 방영할 것임을 예고됐다.
2015년 제작돼 그해 5월과 6월에 첫선을 보인 드라마 '방탄벽'은 총 14부작이다. 드라마의 제목은 김일성의 안전을 지켜 '방탄벽'이 됐다는 북한 방첩기관 요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광복 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1∼7부는 일본에 충실한 기업인으로 위장한 김일성 빨치산부대 특수공작원 정길찬 등에 의해 일본 첩보요원들의 김일성 암살 시도가 실패하는 내용을 담았다.
8∼14부에서는 광복 후 정길찬의 딸 정옥금을 비롯한 방첩기관 요원들이 북한에 잠입해 김일성 암살을 시도하던 일본인 간첩과 일당을 체포하는 내용을 그렸다.
드라마에서는 '독화살'이란 암호명으로 북한에 잠입해 있던 일본인 간첩 요시코가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 연회장에 반입되는 식초에 독약을 섞다가 체포되는 내용이 나온다.
또 주인공이 요시코에게 독약 앰풀을 전달하기 위해 방북한 미·일 첩보요원들을 체포하면서 "남북연석회의를 계기로 (외신) 기자라는 감투를 뒤집어쓰고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반국가모략행위를 한 죄로 기소됐다"고 말하는 장면도 보인다.
이런 내용으로 미뤄 드라마는 실화라기보다는 픽션에 가깝다.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나 제작된 이 드라마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는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주인공이 "온 나라 군대와 인민이 대를 이어 김정은 원수님 두리(주위)에 굳게 뭉친 영원한 방탄벽이 되자"고 호소한다.
북한이 이처럼 국가보위성 대변인 성명 이후 TV 드라마까지 이용해 '수령 결사옹위' 분위기를 고취하는 것은 김정은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끌어내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 매체들은 보위성 대변인 성명 이후 매일 군인과 주민들의 대미 비난과 분노 등을 소개하며 증오 분위기를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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